시론(詩論)들

신춘문예 이렇습니다

능선 정동윤 2011. 9. 19. 23:33

이경철 기자/중앙일보

 

신춘문예 응모자들은 다양합니다. 초등학생부터 80대 노인까지, 맞춤법도 제대로 못 맞추는 원고부터 박사학위 논문에 손색없는 전문적인 글까지 들어옵니다. 노인이 구구절절 자신의 평생을 풀어낸 글이나 지성인들이 사회를 향해 내지르는 주요일간지 칼럼 같은 글들은 그 뜻과 정성은 십분 이해해줄 수 있으나 문학 장르의 문법에 맞지 않아 물론 제일 먼저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신춘문예가 붙기 힘든 '문학 고시(考試)'임을 익히 알고 창작에 열중한 작품들이 심사위원들을 괴롭게 만듭니다. 예전에는 예심에서 한 장 정도 읽고 나서 떨어뜨려도 아쉬울 것 없는 응모작들이 태반이었는데 근래에 올수록 늘고 있는 사설 문학학교나 대학 문예창작학과에 비례해 수준급 작품도 늘고 있습니다. 소설이면 소설, 시면 시 문법에 충실하면서 깊이 있는 작품이 많아 예심단계에서부터 품이 몇 배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응모작들의 수준이 높아져 당선작도 의례 질이 놓아졌는데도 당선 후 작품활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는 문인 비율이 늘고 있는 것이 심각한 문제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요. 바로 창작교육 때문입니다.
예전, 좀더 정확히 말해 1990년대 이전까지 문학도들은 선배 문인들의 작품을 읽든지, 직접 개인적으로 찾아가 지도를 받든지 하는 직, 간접의 사사(師事) 방식으로 창작 수련을 했습니다. 신경숙씨 같은 작가는 좋아하는 작품을 꼼꼼히 옮기는 방식으로 문학 수업을 했다합니다. 찬찬히 음미하며 필사하다보면 문체의 향기는 물론 작가의 숨은 의도도 그냥 읽을 때보다 더 잘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특히 시일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이런 필사로서도 성에 안차면 존경하는 기성작가에게 자신의 창작을 직접 들고 가 문인으로서의 가능성은 물론 작품의 잘잘못을 지적 받기도 했습니다. 이런 사사식 창작교육에서는 문학도로서 가장 중요한 개성은 물론 문학, 문인으로서 끝끝내 지켜내야만 할 진정성과 절실성을 견지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삶에서 충동된 그 어떤 절실한 것이 먼저 창작으로 나아가게 했으니까요.
그러나 문학 수업이 학원화, 실기화 되면서 사정은 달라진 듯 합니다. 90년대 초반은 각종 문화센터의 문학창작반 수강생들이 신춘문예, 특히 소설 부문을 싹쓸이하다시피 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 그렇게 나온 당선자 중 지금까지 창작활동을 펴고 있는 작가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창작 교육을 잘 못 받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취재한 바에 의하면 그들은 몇 명씩 그룹으로 유명 작가 밑에서 자신들의 창작품 1, 2편만 가지고 1, 2년씩 교육을 받았습니다. 시류에 걸맞는 주제의 작품을 계속 지적을 받아가면서 그토록 오랫동안 고치고 가다듬었으니 주제 좋고 소재 좋고 구성 기막히고 문장 정갈하여 신춘문예의 예, 본심을 미끈하게 통과할 수밖에요.
그러나 등단 후가 문제입니다. 이제 홀로 놓여져 써야할 기성 문인의 입장으로 작품 구상도 떠오르지 않으니 답답할 수밖에요. 신춘문예 당선자로서의 자존심은 강하고, 작품은 안나오니 이중으로 죽을 맛이겠고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차라리 좋은 문학 독자, 애호가로 남아 더 행복했을 많은 사람들이 문인으로 들어와 고통을 당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이런 관계로 90년대 후반 들어서부터 신춘문예 심사에서 작품의 완성도 보다 참신성, 개성, 실험성 등을 더 따지게 됐습니다. 물론 각 장르의 문법에 맞고 문장이 정확해야 함은 기본입니다. 80년대 후반에 나온 일부 젊은 여성 작가들 중 여성의 은밀한 욕구과 감성을 발랄하게 까발리며 주목은 받고 있으나 문학의 기본기가 의심스러운 작가들 또한 도태됐거나 문인으로서의 생명 또한 길지 않을 것은 뻔하기 때문에 자기만의 문장이면서 정확한 구사야말로 문학의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자, 이제 금년도 신춘문예에 응모하려는 분들은 지금 작품을 마지막 손질하고 있겠지요. 홀로 꼭꼭 숨어 독방에서 창작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응모작을 한번 보여주십시오. 그리고 그들의 평을 귀담아 들어보세요. 평에 너무 흔들리지 마시고 지킬 줏대는 지키고 고칠 것은 용기 있게 고쳐버리세요. 그리고 한 달이면 처음 작품 시작에도 결코 늦지 않는 기간입니다. 당신의 삶이 간절히 떠올린 주제와 소재를 가지고 한 번 써보십시오. 문학은 이제 문학도들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당신의 개성과 나의 개성이, 당신 삶의 깊은 부분과 나의 그 부분이 간절히, 진정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장이 문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