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야기

소나무와 참나무의 운명

능선 정동윤 2011. 9. 19. 23:34

소나무와 참나무의 운명


  생태학자들은 흔히 참나무가 소나무를 밀어낸다고 한다. 밀어낸다고 밀려나가는 것도 아니고 나무들이 씨름을 하는 것도 아닌데 밀어내기란 무엇일까? 나무들 세계는 겉보기에는 아주 평온하고 점잖은 것 같지만 항상 주위의 다른 나무들과 경쟁하는 매우 긴장된 세계이다. 오죽 했으면 자신의 후손들과도 경쟁할까! 자신들이 살고 있는 영역으로 다른 침입종이 들어오더라도 나무는 짐승들처럼 분비물로서 영역을 표시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날아온 씨앗을 파내 버릴 수도 없어 운명적으로 그냥 이겨내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

  그래서 나무는 가능한 다른 나무를 제치고 높이 자라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때로는 해로운 물질을 분비하기도 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생장력의 차이가 있다면 아무리 긴장하고 애를 써봐도 강자 앞에서 어쩔 수 없는 것이 자연의 이치.

  소나무는 양수라하여 비교적 햇빛을 많이 요구한다. 그래서 소나무는 숲이 우거진 곳에서는 어린나무를 볼 수가 없고 산불이 난 후나 벌채를 하고 난 뒤, 혹은 다른 어떤 원인에 의해 숲이 파괴된 곳에서 흔히 자란다. 이런 나무를 천이초기종이라 한다. 천이란 숲이 발달해 가는 일련의 과정들을 이르는 말이다.


  잡초들이나 간혹 키작은 나무들만이 자라는 곳에서 소나무는 성공적으로 정착하여 집단을 이루며 살아간다. 다른 나무들이 침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뿌리로부터 화학무기를 방출하기도 하고 자신의 그늘에 가려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가지는 스스로 잘라내기도 했다. 하지만 한명의 도둑 앞에서는 열명의 장정도 소용이 없다고 했는가. 어느 틈엔가 전에 없던 나무들이 자라기 시작하고 소나무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신들이 만드는 그늘과 동지들과의 경쟁으로 지쳐간다.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만들었던 화합물들이 숲바닥에 쌓여 스스로가 중독되어 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우리 사람들이 말하는 몇 년의 기간이 아닌 것은 당연하다.

  반면 참나무류는 비교적 그늘에서도 잘 성장하며 소나무에 비해 공간을 장악하는 속도가 빠르다. 참나무류는 씨앗에게 많은 유산을 물려주어 씨앗에서 나온 싹이 비록 빛이 가려져 있더라도 당분간 생명을 유지 할 수 있다. 참나무는 이러한 운명을 잘 알고 있어 그늘에서 잘 견딜 수 있는 힘, 즉 내음성을 잘 발달시켜 놓았다.

  햇빛을 유난히 좋아해서 어린 시기에 햇빛이 절대적인 소나무는 우거진 숲에서는 어미나무의 그늘로 인해 잘 자라지 못하나 참나무류를 비롯한 낙엽활엽수들은 소나무 그늘에서도 비교적 잘 견디며 지속적으로 자라게된다. 참으로 현명하게도 참나무나 일부 단풍나무류들은 어차피 위로는 소나무가 가리고 있는 상황이라 무리하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생산한 양분을 잎을 만들거나 뿌리를 만드는데 소비하지 않고 줄기속에 잘 간직해둔다. 그러다가 조금의 틈이라도 생기면 비축한 양분으로 비상하는 것이다.


 모든 현상에는 생성과 소멸이 있게 마련. 어느 순간 소나무 숲에도 성장의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나이가 든 소나무는 생장이 노쇠하게되고 그 중 가장 허약한 소나무를 대상으로 어디선가 바람이나 벌레가 공격을 하게 되면 숲은 쓰러지는 나무자리에 빈공간이 생기게된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앉아서 준비를 하고 있던 참나무류는 급속하게 자라 오른다. 하나둘 서서히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하는 참나무들은 소나무에 비해 빠르고 왕성한 수관형성으로 인해 점점 지상의 하늘을 점유해 나간다. 이제 세상이 바뀌었다. 소나무는 점점 쇠약해지고 참나무는 반대로 급성장 하게된다. 참나무류에 고립되어 자라던 소나무들은 견디다 못해 쓰러지고 숲은 새로운 주인을 맞이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우리나라 숲의 원래모습은 남부지역의 경우는 서어나무나 단풍나무류들이 주종을 이루는 숲이며 중부지방에서는 신갈나무나 느릅나무, 음나무, 피나무 등의 낙엽활엽수들이 주종을 이루는 숲이 된다. 소나무를 천이초기종이라 하는 반면 참나무류나 서어나무, 단풍나무류를 천이후기종, 혹은 숲이 극한상태에 달했을 때 나타나는 종이라 하여 극상종이라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 대부분의 숲은 과거 황폐화된 이후 급속히 성장하여 자연적인 숲으로 회복되는 과정중에 있다. 대대적인 단일 수종으로 조림되었던 지역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산야에서 소나무가 밀려나면서 그 자리에 참나무류가 주종을 이루어 가고 있다.

  천이후기종으로 채워진 숲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오랫동안 유지된다. 그러나 산불과 같은 교란은 다시 숲을 초기의 모습으로 바꾸어 놓게 되는데 비교적 가볍고 작으며 날개가 달려 장거리로 이동이 용이한 소나무의 씨앗들이 정착하면서 완전히 개방된 공간에서 빛을 한껏 받으며 새로운 숲의 역사를 일구기 시작한다.


 소나무와 참나무는 서로 다른 생태적 습성 때문에 같이 살기는 힘들지만 어느것이 바람직하고 좋다라고 말할 수 없다. 둘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자원이며 나아가 숲의 귀중한 진행자들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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