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詩 능선)

한계산성에 가서/이상국

능선 정동윤 2011. 9. 26. 09:45

한계산성에 가서/이상국

 

 

그해 가을 한계산성 깊이 들어갔다가

나무 이파리 덮고 누운 토끼의 주검을 보았다

희고 가늘게 육탈 된 뼈를

그의 마른 가죽이 죽어라고 껴안고 있었는데

그 검고 겁 많던 눈이 있던 자리에

어린 상수리나무가 집를 짓고 있었다

 

나무 뿌리가 조금씩

조금씩 몸속으로 들어올 때

그는 얼머나 간지러웠을까

 

내가 아무런 대책도 없이

생의 깊은 곳까지 들어갔다가

누군가에게 나를 내줘야 할 때가 온다면

나도 웃음을 참으며

나무에게 나를 내주고 싶다

벌레들에게 몸을 맡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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