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 길(山 능선)

선자령 다녀왔음/2012.2.18

능선 정동윤 2012. 2. 19. 00:15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온몸으로 파고드는 영하 17도의 날씨,

난방 잘된 버스에 익숙한 우리는 평소 겪어보지 못한 깡추위에

방향을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였다.

일부는 먼저 출발하였고 일부는 대관령 방향 오르다 되돌아 선자령으로 회군하였다.

 

아이젠과 스패츠를 신고 얼굴을 꽁꽁 싸매고 두꺼운 장갑을 껴도 바람은 대패처럼 얼굴을 깎고

바늘로 손끝은 찔러왔다.

전국에서 눈산행을 위해 몰려온 산꾼들의 모습은 한결같이 복면을 하였고 산길은 붐볐다.

그러나 산은 완만하였고 바닥은 하얗게 굳어 있었지만

산길만은 아이젠에 밟혀 가루가 되도록 부드러웠다.

 

떡 하나를 준비해도 귀하게 골라오고 술 한 병을 사도 고급스럽게 준비한 선영 회장과

버스 챙기고 문자 날리고 회비 챙기고 회보까지 만들며 분주한 정선 총무의 정성을

선자령 바람은 알아주지 않고 우리들이 잠시라도 한곳에 머물지 못하게 추위를 들어부었다

 

영하의 날씨가 찢어놓은 우리들의 대오는 식사마저 함께하지 못하는 사상초유의

불상사가 생겼고 급기야 상오는 혼자 떨어져 외로운 산행을 하게 만들었다.

이 대목에서 산행대장은 가벼운 머리 무겁게 숙여 사과 드립니다.

다행이 우리들은 금방 잘못을 알아차리고 하산길은 대오의 단절이 거의 없었다

 

풍력 발전기들은 일정한 거리로 떨어져 바람으로 전기를 일으키며 무심히 서 있었다

희고 늘씬한 허우대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선자령 능선의 키 작은 활엽수를 내려다보며

약간 비웃는 듯한 모습으로 장승처럼 박혀서 빙글빙글 큰 날개를 돌리고 있었다.

왠지 감정도 말라 있고 의리나 배려도 없어 보이고 외로움만 가득진 차가운 도시 남자처럼 보였다

 

우리에겐 살을 에이는 칼바람이지만 풍력발전기에겐 사계절 변함없이 선하고 친한 바람이었고

친구에겐 기분 좋게 취하는 향기로운 술이 나에겐 몸을 들쑤시는 심한 독주가 되고

누구에겐 가족간의 따뜻한 유대로 일을 밀어주지만 누구에겐 밥상을 모두 빼앗기는 절망이 된다는

생각에 잠기며 하염없이 걸어오던 눈길도 끝이 나고,

 

위하여, 위하여, . . !

뒤풀이도 끝나고,

 

돌아오는 버스 속,

우리들의 예인 병구가 마이크 들고 분위기를 잡았지만 찬바람 잔뜩 마신 친구들의 반응이 냉랭하여,

브라질에서 공수해온 규진이의 술을 돌리고, 인빈이가 한오백년 초절을 몇번씩 부르며 불을 질러도

노래는 삑사리 되어 좀처럼 분위기가 움직이지 않았다.

동열이의 침 튀기는 재담마저 버스 바닥에 굴러다닐 정도였다

 

인빈이가 우리들이 이렇게 드라이 하지 않았는데…” 라는 자괴 섞인 혼잣말을 듣고서

잠시 망설이다 내가 마이크를 받아 들고 덕고회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읽어보았다.

몇몇의 박수와 함께 가수면 중인 친구들을 깨웠고

천수는 스마트폰 디제이로 나서서 추억을 팝송을 틀기 시작하였다

 

식당에서 특별 조리한 안주가 움직이고 휴게소에서 마련해 온 어묵사발이 힘을 발휘하여

고등학교 수학여행 가는 기분처럼 후끈 달아 올랐다.

드디어 뒤쪽에서 서울에 너무 빨리 도착하였다는 탄식이 터져나왔다.

모든 친구들의 입술이 닿은 구멍 뚫린 술잔에 정처럼 옮아오는 웃음을 끝으로

 

**중학교만 나온 한창동이도 즐거워했고

**중학교를 못 나온 나도 즐거워했다.

 

-정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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