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좋으면 저 멀리 지리산을 볼 수 있다고 지리망산으로 부르다가
다시 지리산으로 불려진다는 상상력이 꽤 부족하거나 사대주의 사상이
진하게 밴 부족하고 가난한 옛사람들의 삶에서 비롯된 이름이라 느껴진다.
또 옥녀봉의 설화는 아비가 딸을 범하고 딸인 옥녀가 산정의 절벽에서
몸을 던지고 그 피가 산자락에 붉게 번져 있다는 패륜적 이야기가 전해져
이 섬에선 결혼식엔 대례를 올리지 않는다는 사량도, 뱀이 많고 뱀처럼 생겼다는
뱀처럼 사악한 전설의 그 섬으로 밤 버스를 타고 달려 가 보았다.
마포, 건겅보험관리공단 앞-삼천포 선착장-유람선 40분;19KM -사량도 내항
-지리망산-월암봉-불모산-가마봉-옥녀봉-대항 선착장 (산행시간;5시간)
강화도가 화강암의 부드러운 바위산이라면 사량도는 편마암의 날카로운 돌산이다.
산행 시작과 함께 숨가쁘게 능선에 오르면 길게 이어지는 보편적인 종주산행이지만
여러 개의 봉우리를 오르내리고 우회하기도 하였다. 특유의 뾰족한 암릉과 너덜지대가
많고 세로로 금이 가는 바위들로 인해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서울 근교의 요석 공주의 전설이 서린 소요산의 바위와 흡사하였다.
산 정상에는 까만 콩 같은 염소 똥이 흩어져 있는 모습에서 인간 독점의 시대에
동물과 인간이 산을 공유하는 자연스러운 현상도 목격했다.
그러나 여름과 가을을 상징하는 수목의 열매나 꽃이 시야에 많이 들어오지 않았고
새 소리도 들리지가 않아서 다소 황량한 기분이 들었지만
능선 좌우로 연속적으로 펼쳐지는 아늑하고 오목하고 나지막하고 잔잔하고 조용하고
겸손하고 평화스런 풍경에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인상적인 가마봉의 수직에 가까운 철제 계단과 옥녀봉의 세 봉우리를 잇는 두 개의
출렁다리 그리고 가마봉과 옥녀봉 사이에 시냇물처럼 흘어내리는 편마암의 길고 긴
돌 무더기가 기억에 남는 하산길이었다.
거친 파도를 고요하게 만드는 섬, 고요해지면 곧 맑고 깨끗해지지 않겠는가?
그 고요함을 오래 간직할 사량도의 슬픈 전설의 번뇌에서 조심스럽게 벗어나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남해의 사량도, 푸른 물결과 주름살도 정겨운 노점 할머니들의 미소가 출렁거리는
전설의 그 섬에 북아등 여전사들의 호위무사로 다녀왔습니다.
-정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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