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市 능선)

녹지 않는 눈

능선 정동윤 2013. 12. 27. 21:52

녹지 않는 눈

산능선

눈이, 미세한 가루가 날린다
뽀얗게 살아 움직이고 햇볕 속으로 달려들고
겨울 가뭄 중에도 멈추지 않고 내린다.
거리엔 사람이 줄고 공사장엔 작업이 멈추었다
낮에도 불 켜진 상점, 주인은 손톱만 매만지고.

나뭇가지 사이로 검은 눈이 솟구친다
공사장 철탑 위에도 아파트 주차장에도
움직이지 않는 승용차에도 검은 눈이 쌓였다.
하늘 향한 지하 주차장 창 틈에도 차곡차곡 .

몇 개 남은 플루타너스의 마른 잎
동굴 속의 박쥐처럼 흔들리는 가로수 위에도,
종일 내려도 흐르지 않고
질척거리지도 않는 눈들이 춤을 춘다
지하도엔 골판지 집들이 밤마다 준공 되고
반 평의 주택들이 아침에는 허물어진다
절망의 눈빛으로 지은 집들은
검은 눈 속에서 매일 재건축되고 있다.

한국 동란 이후
구직이란 글씨를 목에 걸고 담벼락에 기대 선
젊은이의 고개 숙인 사진,
지게를 눕혀놓고 모자로 얼굴을 가린 채
잠을 자고 있는 장년의 사진처럼
다시 내리는 50년대의 검은 눈은 역사의 반복
낮에도 지하도에선 불빛을 피해 우산 아래 잠 들고
낮 열두 시가 지나도 깨어나지 않는 건조한 겨울에
눈이 펑펑 쏟아진다,녹지 않는 검은 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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