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市 능선)

기억력

능선 정동윤 2020. 11. 14. 13:30

기억력

인터넷이 잘되어 검색 기능이 좋아질수록
내 기억력은 줄어드는 기분이다.
그래서 오기가 생겼다.
어떤 단어가 생각나지 않을 때
금방 검색하지 않기로 맘먹었다.

어제 저녁 아내와 산책하면서
백석과 김영한의 사랑 얘기를 하는데
자야 김영한에 영향을 준 하규일 선생과 신윤국 선생 그리고 요정 대원각의 단어가 금방 떠오르지 않았다.

물론 이름이 없어도 상황 설명만으로도 충분히 이야기 전개를 할 수 있고
전체 스토리에는 아무 지장이 없다.
미리 준비한 내용도 아니기 때문에
잘 기억나지 않는 건 있을 수 있으나
그래도 세 단어나 막힌 기억력에
자존감이 팍 떨어졌다.

집으로 돌아와서 검색 후 아내에게
알려주면서 이야기는 끝이 났는데,
새벽녘에 잠이 깨어 다시 그 이름을
상기하는데 하규일과 신윤국은 기억의 두레박으로 퍼올렸는데 요정 이름은
아무리 퍼올려도 빈 두레박이었다.

금방 휴대폰을 검색하고 궁금증 해소하고
잠을 청해도 되지만 휴대폰을 거부하고
다시 오기에 불을 붙였다.
한판 제대로 붙어보자며
새벽잠을 걸고 두레박질을 거듭했다.
삼청각? 청운각? 오진암?

삼청각은 젊은 시절 독일 바이어 접대 차 회장님 따라 가 봤으니 떠올랐고,
오진암은 일본 바이어 접대 차 상급자와 간 기억까지 소환되었다.
그래도 빈 두레박만 오르내리다가
드디어 "대원각!" 하고 생각이 났다.
'대한민국이 원하는 각'으로
다시 이미지 기억을 우물에 담그면서
떠나간 잠을 애걸복걸 붙잡지 않고
이렇게 글까지 남겨둔다.
한 판 승리의 기쁨에
새벽잠이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에 눈이 푹푹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이 푹푹 나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는 아니 올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 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에 지는 것이
아니다.세상 같은 것은 더러워서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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