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 길(山 능선)

추모 산행

능선 정동윤 2020. 11. 25. 16:45

추모 산행

오랜만의 산행은 북한산,
독바위역에서 내려 족두리봉 돌아
향로봉에서 비봉으로 가는 길
전망이 좋은 중턱에서 멈췄다.

오늘은 친구의 추모 산행
천 번의 북한산 산행을 접고
재작년 이맘때쯤 하늘로 떠난 친구
산기슭 꿋꿋한 소나무 아래서
우린 슬픔 대신 추억을 나누었다

구기동에서 추모 산행 마무리하고
우리의 삶을 기름지게 한 산을 떠나
각자 제 갈 길 찾아
뿔뿔이 헤어지고 난 다시 걷는다,
걷자 지칠 때까지 걸어보자.

세검정으로, 백사실 계곡으로
새로 열린 북악의 북측 길로 나아갔다
역사는 북악 창의문 아래 흐르고
정치는 청와대 주변를 맴돌아
서촌을 흔드는 데모대 소리로 높아진다

경복궁역에서 지하철 타고 집으로 향하다가 을지로 3가에서 다시 걸어
충무로 지나고 한옥마을 거쳐서
남산 산책로로 올라 집에 와서야
내 발걸음은 멈추었다. 약 3만 보.

걸으며 생각한다
언젠가 나에게 그날이 오면
부고만 하고 장례식 없이
곧장 화장을 했으면 좋겠다.

이젠 저물어 가는 시간
구름 낀 노을이 더 아름답듯이
삶의 굴곡이 많았던 인생이
오래 기억에 남지 않을까

부러운 삶을 모방 하기도 싫었고
어설프게 전문가인냥 내세우기는
더욱 부끄러워 좋아하는 일 붙들고
변함없이 나를 다독거려왔다

그날 이후 뼛가루 한 줌만 받아
즐겨 다니던 길가에 뿌려 주되
내 삶의 흔적 드러나지 않게
무덤 대신 추억 한 그루 심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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