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서촌 산책/정동윤
경복궁역 5 번 출구는 길다
궁궐의 풍경을 보려면
한참 걸어야 하나보다
또 사람을 기다려도
오래 기다려야 하나보다
추사 김정희의 이야기도 길다
왜 9 년의 유배를 갔는지
그의 세한도가 여러 사람을 거쳐
이제야 용산의 국립 박물관에
걸리게 된 과정도 길다
통의동 백송은 왜 잘렸는지
당시 청와대 주인이 지극 정성으로
살리려 애썼는데,
끝내 죽어야 되었는지
후계목은 과연 직계 자손일까
보안여관은 서정주 시인의 동인지
'시인부락'의 중심지
수많은 문인이 모여 예술혼을 태웠고
소월의 손녀도 시인에게
경제적으로 큰 도움을 받았죠
옛 진명여고는 엄귀비의 애국심 표현
외국의 선교사가 아닌
우리나라 사람이 세운 첫 여학교,
나혜석의 천재성이 빛났고
궁녀들도 신교육을 받았던 곳
춘원 이광수의 집은 음식점을 하더니
지금은 또 수리 중이고
옆 골목의 정치인 신익희 집은 닫혀있고
근처 능소화 휘감은 2 층 집 난간도
햇살 눈부신 날을 기다린다
궁정동의 박정희 대통령 시해 장소는
무궁화 동산으로 바뀌었고
슬픈 역사를 지운 지우개가 원망스러워
척화파의 거두 장동 김문의 김상헌도
수상한 시절을 시비에 남겨놓았다
청와대 옆 칠궁은 지나치지 않고
아들이 왕이 되었으나
후궁 어머니에 대한 효심은
종묘에 모실 수 없는 안타까움으로
일곱 분까지 위폐를 늘어나게 된 칠궁
골목길 걷기가 불편하신 분이 많아
겸재 정선의 집터인 경복고 뜰에서
목을 축이며 한참 쉬었죠
그리고 소나무 소리 청송당 터가 있는
경기상고에선 반송 군락도 감상했죠
자하문터널 옆 모르몬교회가 있는
인왕산 오르는 언덕 위의
백운동천 바위는 건너가고
기와집 도서관의 꽃담이 자랑인
청운 도서관 뜰을 지나서
바야흐로 윤동주 시인의 구역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그래서 잘 안다는 전제를 달고
문학관, 서시 시비,시인의 언덕을 빼고
서시정에 둘러 앉아 시를 나누었다
수성동 계곡 굽이굽이 많은 쉼터에
자주 머물며 문학의 혼을 달래보렸다가
다리 아파 걷기 힘든 분이 많아
위쪽 좋은 길로 천천히 걸어
붐비는 초소책방도 지나쳤죠
아무리 봄날이 눈부셔도
건강이 받쳐주지 않으면 공염불,
다리가 아프면 귀가 닫히고
삶도 점점 어두워지기에
더 멀리 가지 않기로 했죠
수성동 기린교도 박노수 미술관도
위항문학의 벽화도 나중으로 미루고
뒤풀이로 추어탕 집에 모여
도종환의 시 '가죽나무' 낭송으로
아쉬운 작별 인사드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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