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숲에서/안도현
참나무 자작나무 마른 잎사귀를 밟으며
첫눈이 내립니다
첫눈이 내리는 날은
왠지 그대가 올 것 같아
나는 겨울숲에서 한 그루 나무로 서서
그대를 기다립니다
그대를 알고부터
나는 기다리는 일이 즐거웠습니다
이 계절에서 저 계절을 기다리는
헐벗은 나무들도 모두
그래서 사랑에 빠진 것이겠지요
눈이 쌓일수록
가지고 있던 많은 것을
송두리째 버리는 숲을 보며
그대를 사랑하는 동안
내 마음 속 헛된 욕심이여
보잘 것 없는 지식들을
내 삶의 골짜기에 퍼붓기 시작하는
저 숫눈발 속에다
하나 남김없이 묻어야 함을 압니다
비록 가난하지만
따뜻한 아궁이가 있는 사람들의 마을로
내가 돌아가야 할
길도 지우고
기다림으로 부르르 몸 떠는
빈 겨울 나무들의 숲으로
그대 올 때는
천지사방 가슴 벅찬
폭설로 오십시오
그때까지 내 할 일은
머리 끝까지 눈을 뒤집어쓰고
눈사람 되어 서 있는 일입니다
'좋아하는 시(詩 능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개/이시영 (0) | 2011.09.01 |
---|---|
일주문 앞/김광규 (0) | 2011.09.01 |
견우의 노래/서정주 (0) | 2011.09.01 |
간격/안도현 (0) | 2011.09.01 |
간(肝)/서정주 (0) | 2011.09.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