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詩 능선)

할머니와 어머니/문정희

능선 정동윤 2011. 9. 14. 15:04

할머니와 어머니/문정희

 

 

김포공항을 떠날 때 나는 등 뒤에다

모든 것을 두고 떠나왔다

남편의 사진은 옷장 속에 깊이 숨겨두었고

이제는 바다처럼 넓어져서

바람소리 숭숭 들려오는 넉넉한 나이도

기꺼이 주민 등록증 속에 끼워두고 왔다

그래서 나는 큰 가방을 들었지만

날을 듯이 가벼웠다

내가 가진 것이라곤 출렁이는 자유

소금처럼 짭짤한 외로움

이거면 시인의 식사로는 풍족하다

그런데 웬일일까

십수 년 전에 벌써 죽은 줄로만 알았던

우리 할머니와 우리어머니가

감쪽같이 나를 따라와

내 가슴 깊숙이 자리잡고 앉아

사사건건 모든 일에 간섭하고 있다

두 눈 동그랗게 뜨고

"조심조심 길조심" 성가시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