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어머니/문정희
김포공항을 떠날 때 나는 등 뒤에다
모든 것을 두고 떠나왔다
남편의 사진은 옷장 속에 깊이 숨겨두었고
이제는 바다처럼 넓어져서
바람소리 숭숭 들려오는 넉넉한 나이도
기꺼이 주민 등록증 속에 끼워두고 왔다
그래서 나는 큰 가방을 들었지만
날을 듯이 가벼웠다
내가 가진 것이라곤 출렁이는 자유
소금처럼 짭짤한 외로움
이거면 시인의 식사로는 풍족하다
그런데 웬일일까
십수 년 전에 벌써 죽은 줄로만 알았던
우리 할머니와 우리어머니가
감쪽같이 나를 따라와
내 가슴 깊숙이 자리잡고 앉아
사사건건 모든 일에 간섭하고 있다
두 눈 동그랗게 뜨고
"조심조심 길조심" 성가시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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