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는 땅, 청설모는 나무가 생활 터전
다람쥐는 땅, 청설모는 나무가 생활 터전 |
‘겨울이 되어야 솔(松)이 푸른 줄 안다’는 말은 난세(亂世)에 훌륭한 사람이 나타난다는 뜻이리라. 그리고 ‘겨울 화롯불은 어머니보다 낫다’고 하니, 옛날에 겨울 보내기가 얼마나 힘들었나를 엿볼 수 있다. 저녁마다 소죽솥 아궁이에서 토막 숯과 솔가지 재를 화로에 소담스럽게 퍼담아 꼭꼭 눌러 할머니 품 앞에 놓아 드렸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언 반세기가 다 되어가니 참 세월이 무상하다. 겨울나기는 비단 사람뿐만 아니라 살아 숨쉬는 생물 모두들의 난제(難題)다.
겨울을 잘 보내고 봄 세상 만나 노닐고 있는 다람쥐와 청설모를 찾아가본다. 다람쥐야 우리 토종(土種)이라 치고 청설모(청서모·靑鼠毛) 녀석들은 언제 어떻게 굴러들어왔는지 모르겠다.(아는 사람이 있으면 알려주시라!) 우리 어릴 적엔 못 보던 놈들인데 말이지.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뺀다더니만 다람쥐는 쪽도 못 쓰고 청설모 세상이다.
변온동물인 개구리나 달팽이의 겨울나기는 진짜 동면(冬眠·hibernation)이다. 꼼짝 못하고 몸이 땅땅 얼어 겨울을 견딘다. 그런데 정온동물 중에도 다람쥐, 박쥐, 고슴도치 놈들은 겨우내 달싹 않고 굴에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죽은 듯이 지낸다. 다람쥐는 보통 때는 1분에 200번 숨을 쉬지만 한겨울 굴참나무 밑둥치 틈새에서 동면 중인 녀석은 1분에 4~5회만 숨을 깔딱거릴 뿐이고, 심장박동은 150회였던 것이 5회로 줄어든 채 빈사(瀕死·반죽음) 상태다.
청설모와 다람쥐는 생김새가 비슷하여 다같이 다람쥐과(科)에 속한다. 청설모는 다람쥐에 비해 훨씬 덩치가 크고, 집을 나무 위에 지으며, 잣이나 밤을 주로 따 먹고, 월동을 하는 다람쥐와는 달리 겨울에도 나다닌다. 그런가 하면 다람쥐는 알다시피 조막만한 것이 청설모보다 훨씬 작고, 몸이 갈색 털에다 등줄기 무늬가 있고, 추위에 약해서 철저하게 겨울잠을 자고, 주로 도토리를 먹는다. 잣과 밤을 주식(主食)으로 하는 청설모와는 그래서 같은 지역에 살 수가 있다. 먹이가 겹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다람쥐가 주로 땅에 산다면 청설모는 나무를 무대로 하여 살기에 공서(共棲)가 가능하다. 그러나 영역다툼(텃세)에 있어서는 힘 약한 다람쥐가 덩치 큰 청설모에게 쫓겨 다닌다.
나도 언젠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여름철이다. 저 녀석이 왜 몸 색깔이 저렇게 달라졌냐? 몸에 어디 병이 났나? 겨우내 새까맣던 청설모가 회갈색으로 흐리멍덩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청설모는 털갈이를 한다. 추울 때는 흑색 털을 뒤집어썼다가 무더운 여름이 오면 회갈색으로 갈아입는다. 그러다가 늦가을로 접어들면서 또 갈이를 하여 햇볕을 몽땅 흡수하는 새까만 털로 바꾼다. 청설모 녀석은 외출복이 두 벌이나 된다. 이렇게 털을 바꿔 겨울 채비를 하기에 월동을 하지 않는다. 북극에 사는 토끼 무리도 겨울에 흰털을, 여름에는 검은 털로 바꾼다. 보호색으로 갖추느라 그렇다.
청설모는 나무에 주로 산다고 했다. 그렇다면 영역(살터·territory)이 겹치는 동물이 있지 않은가? 바로 까치다. 청설모가 까치집 지은 나무 근처에 나타났다간 난리가 난다. 당연히 청설모가 까치에게 맥을 못 춘다. 그래도 까치와 청설모는 먹이 다툼이 없고, 오직 공간(터)만 조금 겹치기에 함께 산다. 저렇게 먹이(food)와 공간(space)을 많이 얻어 자손을 더 퍼뜨리겠다고 피나는 생존경쟁을 한다. 약육강식하는 밀림(密林)이 따로 없다. 사람도 저것들과 손톱 끝만큼도 다르지 않다.
강원대학교 명예교수(okkwon@kangwon.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