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야기

북한산이 존재하기에 1천만 시민 또한 살 수 있다 2

능선 정동윤 2011. 9. 19. 22:02

눈의 역할

▲ 담의 존재를 정확히 알고 있는 반대 방향으로 가지를 뻗은 전나무들.
흰 눈이 내린 숲은 참으로 고요하고 평온해 보입니다. 반면 차가운 눈이 내린 추운 겨울 숲을 생각하면 동물들이나 식물들이 얼어 죽지 않을까 걱정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과 달리 흰 눈이 덮인 숲은 식물이나 동물들을 추위로부터 지켜주는 아주 중요한 보온역할을 한답니다.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의 사람들이 눈으로 집을 짓고 그 안에서 생활한다는 것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눈의 역할은 이뿐 아닙니다. 겨울철 강한 바람이나 태풍으로 인해 침식될 수 있는 비옥한 토양층인 표토의 이동을 막아줌으로써 토양의 비옥도를 유지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것도 바로 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비와는 달리 천천히 녹아내리는 눈은 토양에게 물을 흡수할 수 있는 여유를 주어 많은 양의 물이 숲에 저장되도록 도와줍니다. 그래서 겨울의 눈은 이듬해 많은 생물들이 활발하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게 하는 매우 중요한 자연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변을 인지하는 나무

북한산 우이동 등산로 입구를 지나다 보면 왼쪽에서는 아주 올곧게 자란 튤립나무들을, 그리고 오른쪽에서는 늘 푸른 침엽수인 전나무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근데 전나무를 가만히 들어다보면 나뭇가지들이 한결같이 한쪽 방향으로만 뻗어 있는 특이한 현상을 관찰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이곳뿐만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자주 관찰되는 모습입니다.

▲ 한 쌍의 연인이 사랑을 나누는 것처럼 서로 부둥켜안고 자라는 벚나무.
많은 분들이 나무는 빛과 물의 방향에 따라서만 자라나는 단순한 식물로만 생각하고 계신데, 이것은 큰 오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아직도 우리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나무에 대해서 많이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나무가 빛과 물의 방향에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밖에도 자신이 놓여 있는 주변 환경을 매우 정확하게 인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북한산의 나무들도 옆에 어떤 나무가 자라고 있는지, 혹은 나뭇가지가 뻗어나가는 방향에 다른 사물이 놓여 있는지가 빛의 방향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전나무의 경우에도 나뭇가지가 없는 쪽은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담벼락을 세워놓았는데 나무들은 그 담벼락의 존재를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방향으로 가지를 뻗지 않는 것입니다.

연리목

매표소를 들어서서 약 20m 앞쪽으로 가보면 왼쪽에 벚나무 두 그루가 마치 한 쌍의 연인이 사랑을 나누는 것처럼 서로들 부둥켜안고 자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를 가리켜 연리목(連理木)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두 나무가 서로 함께 연결되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입니다.

이들은 삶을 공유하면서 둘이 하나가 된 나무입니다. 물론 이러한 연리목 현상은 반드시 종류가 같은 나무에서만 가능한 현상이죠. 예를 들어 소나무와 전나무는 연리목이 될 수 없습니다. 사진 속의 나무들 역시 두 그루의 벚나무가 하나가 된 것입니다.

북한산의 가치

▲ 북한산은 숲뿐 아니라 곳곳에 드러난 화강암이 일품인 산이다.
북한산은 특히 겨울의 모습이 좋습니다. 그 기본 모암인 화강암을 고스란히 들어낸 그 자태가 과히 일품이 아닌가요. 왕이 거주하는 곳을 기준으로 북쪽에 위치해 있다고 해서 붙어진 북한산은 우리에게 있어서 참으로 귀중한 자연입니다. 인구 1천 만이 넘는 거대 서울을 품고 오늘도 맑은 공기와 맑은 물을 쉼 없이 내보내주기 때문이죠.

북한산의 나무들은 늘 신선한 바람으로 서울의 탁한 공기를 밀어내어 정화시켜주며, 북한산의 암반인 화강암은 물의 정화능력이 뛰어나 맑은 물을 제공해줍니다. 북한산이 존재하기에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 속에서 시민들이 그나마 건강하게 살 수 있지 않은가 생각해 봅니다.

북한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지가 벌써 22년이 넘었습니다. 언젠가 산을 좋아하는 독자들과 함께 이토록 아름다운 북한산을 거닐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려봅니다.

글·사진 남효창 숲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