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야기

3억5천만 년 동안 지구라는 제국 지배/나무

능선 정동윤 2011. 9. 19. 22:09

3억5천만 년 동안 지구라는 제국 지배해와

▲ <사진 1> 생강나무 꽃.
곧 봄이다. 매년 같은 봄을 맞이하지만 늘 새롭다. 봄은 노란 색 물감을 빼어들고 온천지를 칠하기 시작한다. 그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색깔이다. 우리에겐 늘 노란 색 봄이 찾아온다. 산속 깊은 숲에서는 생강나무가, 들판에는 산수유가, 길가에는 개나리가 모두 노란 색이며, 양지바른 땅바닥에는 앙증맞은 양지꽃과, 가끔은 빛이 스며드는 숲 바닥에는 복수초가 노란 색동옷을 입은 봄을 만든다.

봄이 무르익고 여름으로 가면서 우리의 온 천하는 화려한 천연색으로 도배를 할 때 온갖 생물들의 시선과 인간의 마음을 잡아당긴다. 늘 그렇게 자연은 사랑의 마음을 나누는 축제의 장을 준비해왔다(사진 1~4).

곤충과 동물들을 위해 삶의 터전 제공

나무와 들꽃이 없는 우리 주변은 너무 삭막하다. 도시나 마을이나 길거리에서나 정원에는 늘 나무들이 우리를 반기고 있지만, 우리의 일상은 그들에게 다소 냉소적이다. 나무가 생산하는 산소는 모든 생명을 숨쉬게 할 뿐 아니라 오존으로 변화되어 자외선을 차단해주는 오존층을 형성하는 일부터 시작해서 인간의 정서까지도 파고들어 위대한 철학자나 사상가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한 가지만 더 거론해야겠다. 나무는 어느 민족이든 인류의 문화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온 것 또한 사실이다. 단풍나무는 캐나다를, 히말라야시다는 레바논을, 참나무는 독일을, 아카시나무는 폴란드를, 벚나무는 일본을 상징한다. 아마도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것은 소나무가 아닐까? 

이처럼 나무는 늘 민족을 상징하는 표상이 되어왔다. 그만큼 나무가 인류에 미친 영향은 아름다운 꽃의 색깔보다 더 다양하다. 하지만 우리는 나무라는 생명체의 본질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바가 없다. 올 봄만큼은 산을 등산의 개념으로 찾든, 나들이의 의미로 찾든지 간에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살고, 가장 높고, 그리고 가장 위대한 생명인 나무에 대해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 <사진 2> 산수유 꽃.
봄바람이 숲 안으로 스며들면 바람 그 이상의 의미가 되어버린다. 나무가 내놓는 방향물질이 바람을 타고 인간의 인체에 이르면, 그것은 인간이 만든 어느 공기청정기와 비교할 수 없는 소위 약으로 환원된다. 그래서 나는 나무들이 더불어 사는 숲을 생태종합병원(ecoklinik)이라 감히 이야기한다(사진 6).

빛이 내리쬐는 여름 숲의 시원함은 에어컨 바람 앞에서 더위를 식히는 것과도 확연히 맛이 다르다. 긴꼬리제비나비 한 마리가 산초나무의 꽃을 발견하면 미친 듯이 춤을 추며 주변을 맴돌듯, 들풀과 나무가 만들어내는 숲의 향기는 반가운 내 가슴을 뛰게 하기에 충분하다. 잠시 누워 있던 내 위로 참나무부전나비 한 마리가 가볍게 내려앉지만 내게는 그 나비가 웬지 무겁게 느껴진다. 세상에 나비보다 가벼운 생물이 얼마나 있을까마는 6개의 발이 누르는 무게의 느낌은 부담스럽기만 하다(사진 7~9). 

내 마음의 무게일까? 이 나비가 찾는 것이 혹시 내가 아니라면 실망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 그리고 이 나비와 교감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배우지 못한 나의 무지함이 부담감으로 다가온다. 이 작은 생명이 내 작은 움직임 하나로 태풍이 일어난 듯 놀라지는 않을지 마음은 점점 더 무거워진다.

늘 숲을 찾고 숲에서 사색을 하면서도 내가 자연이 아님을, 그리고 숲의 일원이 아님을 느끼며, 늘 낯선 관객으로밖에 머물 수 없는 나 자신을 바라보면, 언제부터인가 나 자신이 자연, 아니 숲에서 너무 멀리 와 버렸다는 것을 발견한다. 아스팔트와 아파트, 그리고 자동차가 더 익숙하며, 인스턴트식품에 길들여진 나는 이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숲에 던져진 하나의 오염 덩어리인 것만 같아 미안함마저 든다.

▲ <사진 3> 개나리 꽃.
산초나무를 맴도는 긴꼬리제비나비와 내 몸 위에 잠시 쉬러온 참나무부전나비 중 누가 더 생명력이 강할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긴꼬리제비나비가 산초나무만을 고집하는 데 반해 참나무부전나비는 거의 모든 참나무류를 선호한다는 사실을 안다면 답은 명확하다.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에 있어서는 참나무부전나비가 긴꼬리제비나비보다 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산초나무 이외에 그 어떤 것도 먹는 법을 배우지 못한 긴꼬리제비나비는 산초나무가 사라지면 자연적으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지금까지 사라져버린 생명은 얼마나 많을까. 이러한 연관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개발만을 일삼는 인간의 논리에 의해 이미 사라져버린 생명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산초나무만을 선호하는 종은 긴꼬리제비나비 이외에도 호랑나비와 제비나비가 있다.

우리나라엔 소나무와 참나무류가 참 많다. 어딜 가도 쉽게 만나는 나무들이다. 그들이 이 땅을 선호하면서 살아가는 이유는 그들의 습성 때문이다. 매우 건조한 곳에서 자랄 수 있으며, 토양의 비옥도가 낮아도 살아갈 수 있는 특성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봄과 가을은 너무나 건조하고, 화강암이 많은 이유로 토양에는 무기영양소가 많이 머물지 못한다.

참나무류들 중에서 도토리의 크기와 나뭇잎의 크기가 가장 작은 것에서 그 이름이 유래된 졸참나무는 나비류만 14종 이상을 먹여 살린다. 그러한 나비류에는 대왕나비, 금강산귤빛부전나비, 민무늬귤빛부전나비, 귤빛부전나비, 시가도귤빛부전나비, 참나무부전나비, 담색긴꼬리부전나비, 물빛긴꼬리부전나비, 아이노녹색부전나비, 큰녹색부전나비, 산녹색부전나비, 애조녹색부전나비, 담흙부전나비, 멧팔랑나비가 있다.

나비류만 해도 이 정도니 그밖에도 함께 살아가는 수많은 곤충들과 다른 동물들을 어찌 다 셈할 수 있으랴. 그들에게 먹이와 잠자리를 제공하고 다음 세대를 이어나갈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주는 나무는 거대한 왕국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니 이러한 왕국에서 살아가는 생명들이 나무를 생각하는 마음은 어찌 우리의 것과 비교할 수 있을까(사진 10). 마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처럼 숲이 만든 이 놀라운 동화의 나라를 거닐 수 있다는 건, 그들에겐 내가 괴물같이 보일지 모르지만, 분명 행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