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야기

나무의 체력단련 ‘담금질’

능선 정동윤 2011. 9. 19. 22:34

나무의 체력단련 ‘담금질’

입동(立冬)을 살짝 지났으니 속절없이 이제 겨울이다. 엄동설한(嚴冬雪寒), 칼겨울이 있기에 우리는 봄의 따스함을 알게 된다. 배고픔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어찌 만복(滿腹)의 고마움을 알리오. 누가 뭐라 해도 봄 매화의 짙은 향은 차디찬 칼겨울을 머금은 탓이 아니겠는가.

필자는 이 추운 동절(冬節)에도 매일 오후면 산등성이를 냅다 뛴다. 물론 길섶의 나무들과 늘 수인사 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길섶엔 진달래와 산철쭉이 가까이 서있고, 조금 먼 곳에 큰 나무들이 즐비하니 소나무, 참나무 등이 그들이다. 소나무 말고는 죄다 잎을 버린 나목(裸木)들이 줄지어 있는 황량한 산모퉁이를 걷다가 우연히 밤나무와 참나무가 찌든 마른 잎을 매달고 있음을 보고 깜짝 놀란다. 왜 저것들은 이파리를 떨어뜨리지 않고 봄이 올 때까지 저러고 있을까. 잘 보면 정원의 단풍나무도 바싹 메마른 잎사귀를 그대로 붙들고 있다.

이제 밤나무와 참나무(굴참나무,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등이 속함), 단풍나무에 가까이 가서 이파리 하나를 비틀어 따보자. 넓적한 잎자루 끝이 어린 겨울눈(동아,冬芽)을 덮어 싸고 있지 않은가. 그냥 물기 잃은 이파리로 있었던 것이 아니다. 내년에 움터 나올 어린 눈(싹)을 감싸 보호하고 있었다. 즉 그 마른 잎(잎줄기)은 여린 눈이 얼어죽는 것을 막아주기 위해 그렇게 나뭇가지에서 떨어질 줄 모르고 붙어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지저분하다고만 하지 않았던가.

그 움에선 새싹이 나오고 움잎을 틔워서 새 가지가 생겨날 것이다. 목련나무는 솜털로, 산철쭉은 끈끈 점액으로, 진달래는 비늘잎으로 겨울눈을 보호한다. 그런데 참나무나 밤나무, 단풍나무는 말라비틀어진 형(兄) 잎이 겨우내 그렇게 어린 동생 싹을 보호하고 있다.

동물은 추워지면 몸에 기름기(지방)를 비축하는데, 식물은 주로 당(糖)을 세포에 축적한다. 이렇게 추위를 이기기 위해서 당을 쌓는 것을 ‘담금질(hardening)’이라 한다. ‘야물어짐’이라 해도 되겠는데 담금질이 일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일찍) 날씨가 추워지면 나무는 맥없이 죽어버리고 만다. 가을 배추나 무도 가을이 되면 당분을 많이 만들어서 단맛이 더 난다. 그래서 필자도 일기예보에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끝까지 버티다가 요 근래 와서야 배추를 묶었다. 고갱이(초목의 줄기 속에 있는 연한 심)가 어는 것을 막아야 하기에 언젠가는 싸줘야 하지만, 가능한 땡땡 얼려서 세포에 당을 많이 모이게 하자는 뜻이었다. 요 못된 인간들의 이기심이라니…. 실은 그래서 봄 채소와 가을 채소가 맛과 향에서 차이가 난다.

자동차 부동액과 같은 역할

설명을 좀 보태보자. 나무가 겨울에 얼어죽지 않는 것 또한 이 담금질 덕이다. 당이 세포에 쌓여서 그것이 부동액(不凍液)이 되어 세포가 얼지 않는다. 게다가 상록수의 세포벽은 (활엽수에 비해서) 두껍고 딱딱하여 세포 안의 물이 얼어서 부피가 늘어나도 잘 터지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세포에 생기는 알갱이가 아주 작아서 세포에 크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사람 등 동물의 세포막은 무척 얇아서 한번 얼었다하면 세포가 파열해 버린다. 이것이 바로 동상(凍傷)이다.

결론적으로 세포 안에 당 등 여러 물질이 들어있어 세포액의 농도가 짙어지면서 겨울식물이 얼어죽지 않는다. 소금물이나 더럽게 오염된 물이 잘 얼지않는 것도 같은 이치다. 바닷물이 강물에 비해 덜 얼고, 옛날의 한강(漢江)이 지금보다 더 자주 얼어붙었던 것은 강물이 지금보다 맑고 깨끗했기 때문이다. 나무들이 죽지 않고 그 아픈 송곳 겨울을 잘도 이겨내는 데에는 바로 부동액의 신비가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