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가 모닥불에 살찐다고 했던가. 점심을 먹고 와 양지 바른 곳에서 담소를 즐기며 따스한 햇볕을 쬐고 있다. 젖먹이 아이들에게 일광욕을 시키는 이유와 같다. 살갗은 비타민 제조공장이므로 햇살(자외선)을 받아서 에르고스테롤(ergosterol)이 비타민D로 바뀐다. 우리 같은 노인에게는 이 비타민이 뼈를 튼튼하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전립선암을 예방한다고 하니 볕은 쬘수록 좋다. 겨울에는 일조시간이 짧아 수면(잠)에 필요한 멜라토닌(melatonin) 분비가 부족하기 쉽다. 햇빛을 오래 받아야 숙면을 취할 수 있다는 말이다. 여성은 하루에 15분 이상 직사광선을 받으면 자궁암을 예방한다고 하니 햇살은 한 마디로 약방의 감초다.
겨우내 휴식을 취하고 있는 집 뒤의 논배미로 발길을 돌려본다. 밭의 두렁과 두렁 사이, 움푹 들어간 곳이 밭고랑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두렁은 우뚝 솟아 있기에 볕을 잘 받지만 고랑은 하루종일 두렁의 그늘이 지는 응달이다. 둘은 서로 온도가 다르다. 그래서 눈 온 뒤에도 두렁의 눈은 태양을 받아 곧바로 녹아버리지만 고랑의 것은 여간해서 녹지 않는다. 밭이랑 하나를 두고도 두렁과 고랑 사이에 이렇게 온도차가 난다. 일조(日照), 바람받이 등의 환경에 따라 생기는 아주 작은 기후의 변화(차)를 미기후(微氣候, microclimate)라고 한다.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눈이 마당에 수북이 쌓여 있다. 이때 온도계를 들고 나가서 공중과 눈 속의 온도를 쟀을 때 온도차가 날까. 온도차가 있다면 어느 쪽이 더 높을까. 당연히 눈 속의 온도가 높다. 공기와 눈 안의 온도차, 이것도 하나의 미기후다. 마당가의 가랑잎 밑을 잰 것과 흙 속의 온도 또한 다르다. 한 건물에서도 앞마당과 뒤뜰의 온도는 천양지차가 난다.
‘칼추위’ 속에서도 광합성
기후를 결정하는 조건은 무엇인가. 바로 이 기후가 생물의 죽살이(生死)를 결정하는 것이기에 굳이 따져보려 한다. 조습(燥濕), 청우(晴雨), 한서(寒暑) 등을 한 마디로 기후라고 하며, 이 세 가지 조건에는 모두 물, 햇빛, 온도, 바람이 관여한다. 사막이냐 늪이냐는 물이 결정하고, 열대ㆍ온대ㆍ한대를 결정하는 것은 햇볕에 따른 온도이다. 바람에 따라서도 동식물의 분포가 달라지고, 물 속의 경우에는 산소의 유무가 중요한 생존(제한)요인이다.
다시 밭으로 가보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아무 것도 없던 밭두렁에 냉이, 달맞이꽃, 애기똥풀, 씀바귀, 고들빼기가 줄줄이 골을 이루고 있다. 이 식물 또한 미기후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한데 이것들은 하나같이 땅바닥에 바싹 웅크리고, 납작 이파리를 붙이고 있다. 모두 장미 꽃송이처럼 작은 잎이 둥글게 촘촘히, 다닥다닥 열 지어 동심원(同心圓)으로 모양좋게 배열하고 있다. 아래의 큰 잎과 위의 작은 것이 엇갈리게 포개어 있다. 이런 꼴을 로제트(rosette)라고 한다. 땅의 온도(지열)를 한껏 쓰겠다는 작전이다. 그 교묘함에 마냥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또 하나, 봄 여름에는 그것들이 연한 녹색을 띠었는데, 겨울 풀들은 하나같이 탈색되어 불그스레한 보라에 짙은 갈색이 배어 있다. 추위에 엽록체는 모두 파괴되고 냉기에 강한 잡색체(雜色體)들만 남아서 그렇게 퇴색된 잎이 된 것이다. 다른 말로 적게나마 그 칼추위에서도 광합성을 한다는 것이다. 삶이 정녕 지겹고 힘들다 싶으면 지금 당장, 여기 겨울 밭 가에 가보라. 생명의 끈질김과 경이로움이 살갑게 맞이할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