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무백열(松茂柏悅)’이라는 말이 있다. ‘소나무가 무성하니 잣나무가 반긴다’라는 뜻으로 친구의 잘됨을 기뻐한다는 의미이다. 이 말에서는 소나무와 잣나무를 벗으로 비유했으나, 생물학적으로 보면 이 두 수종은 사촌뻘이 된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고약한 심보에 비하면 지음(知音)을 아낀다는 것은 참 갸륵한 일이다.
소나무 하나도 그냥 지나쳐볼 일이 아니다. 자연에 흐드러지게 숨어있는 비밀이 곧 자연 법칙이니 하는 말이다. 길섶을 지나면서 쉽게 만나볼 수 있는 소나무에는 크게 보아 세 가지, 즉 세 사촌이 있다. 소나무에 가까이 가서 솔잎을 한번 자세히 들여다보자.
소나무는 이파리가 두 개씩 묶어 나는 것이 대부분인데, 이것이 우리 나라의 재래종 소나무 육송(陸松)이다. 연년세세(年年歲歲) 우리와 같이 살아온 그 소나무이다. 자리를 잘 잡은 놈은 길길이 자라 낙락장송(落落長松)이 되지만, 그렇지 못한 것은 땅딸보 왜송(矮松)으로 남는다. 그러나 낙락장송이나 왜송이나 다 똑같은 종(種)이다.
이와 달리 잎이 짧고 뻣뻣하여 거칠어 보이는 것이 있는데 그 나무의 잎을 따보면 잎이 세 개씩 묶어 나있다. 이 소나무는 리기다소나무로 북아메리카가 원산지이며 병해충에 강하다고 하여 일부러 들여와 심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를 기다리는 소나무가 있으니, 이파리가 유달리 푸르러 보이고 잎이 통통하고 긴 잣나무이다. 잎을 잘 관찰해보니 한 통에 잎이 다섯 개나 모여 있지 않은가. 5형제가 한 묶음 속에 가지런히 들어 있어서 다른 말로 오엽송(五葉松)이라고 부른다. 소나무면 다 소나무인 줄 알았는데 잎부터 이렇게 다르니 이것이 자연의 비밀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무덤 지키는 나무도 소나무
알고 보면 우리 나라만큼 소나무가 많은 나라도 없다. 예로부터 소나무를 귀하게 여겨 다른 잡목(雜木)을 골라 베어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소나무가 많은 만큼 그 용도도 다양하다. 우리 조상들은 솔방울은 물론이고 마른 솔가지 삭정이와 늙어 떨어진 솔잎은 긁어다 땔감으로 썼고, 밑둥치는 잘라다 패서 주로 군불을 때는 데 썼다. 솔가지 태우는 냄새는 막 볶아낸 커피 냄새 같다고 했던가.
그뿐인가. 옹이진 관솔가지는 꺾어서 불쏘시개로 썼고, 송홧가루로는 떡을 만들었으며, 속껍질 송기(松肌)를 벗겨 말려 가루 내어 떡이나 밥을 지었고 송진을 껌 대신 씹었다. 더욱이 요새 와선 솔잎이 몸의 피돌기를 원활히 해준다 하여 사람들이 솔잎 즙을 짜서 음료로 만들어 팔기에 이르렀다. 그 물이 달콤하기 그지없으니 이는 설탕과 비슷한 과당이 많이 든 탓이다. 또 솔잎에는 배탈이 났을 때 좋은 타닌(tannin)도 그득 들어 있다.
무엇보다도 소나무는 집을 지을 때 없어선 안될 소중한 존재이다. 우리가 사는 집도 소나무로 지었고, 무덤을 지키는 나무 또한 소나무가 아닌가. 죽은 시체는 또 어디에 누워 있는가. 소나무 널빤지로 만든 관이 저승집이다. 바람소리 스산한 무덤가의 솔잎 흔들림에 근심 걱정을 푸는 해우(解憂)의 집이다.
늘 푸름을 자랑하는 만취(晩翠)의 소나무에는 영양소와 함께 우리의 넋이 들어 있고, 조상의 혼백이 스며 있다. 그러면서 소나무는 우리에게 절개(節槪)를 지키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처럼 인간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소나무에 대해 어떤 이는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았던가?
“금줄의 솔가지 잎에서 시작하여 소나무 관 속에 누워 솔밭에 묻히니, 은은한 솔바람이 무덤 속의 한을 달래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