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선 정동윤
2011. 9. 20. 07:19
推敲에 대하여
시를 다듬는다는 것에 대하여 퇴고(推敲)라는 고사성어를 새겨보면 글을 다듬는 것의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퇴(推)는 밀다라는 뜻이고, 고(鼓)는 두드린다는 뜻의 한자다. 퇴고(推敲)란 시문(詩文)을 지을 때 자구(字句)를 여러 번 생각하여 고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당나라 때의 시인 가도〔賈島:字는 낭선(浪仙),777∼841〕가 어느날, 말을 타고 가면서 <이응의 유거에 부침〔題李凝幽居〕>이라는 시를 짓기 시작했다.>
이웃이 적어 한가로이 살고〔閑居隣竝少〕 풀숲 오솔길은 황원으로 드네〔草徑入荒園〕 새는 연못가 나무에 잠자리를 잡고〔鳥宿池邊樹〕 스님은 달빛 아래 문을 두드리네〔僧鼓月下門〕
그런데 마지막 구절의 '스님은 달 아래 문을‥‥‥'에서 '민다〔推〕' 라고 하는 것이 좋을지, '두드린다〔鼓〕로 해야 좋을 지, 여기서 그만 딱 멈추어 버렸다. 그래서 가도는 '推'와 '鼓'의 두 글자만 정신없이 되뇌며 가던 중, 타고 있던 말이 고관의 행차와 부딪치고 말았다.
"무례한 놈 무엇 하는 놈이냐? " "당장 말에서 내려오지 못할까!" "이 행차가 뉘 행찬 줄 알기나 하느냐?" 네댓 명의 병졸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내뱉으며 가도를 말에서 끌어내려 행차의 주인공인 고관 앞으로 끌고 갔다.
그 고관은 당대(唐代)의 대문장가인 한유(韓愈)로, 당시 그의 벼슬은 경조윤(京兆尹:도읍을 다스리는 으뜸 벼슬)이었다. 한유 앞에 끌려온 가도는 먼저 길을 비키지 못한 까닭을 솔직히 말하고 사죄했는데 그러자 한유는 노여워하는 기색도 없이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내 생각엔 '퇴(推)'보다는 '고(鼓)'가 좋겠네." 이 사건을 계기로 가도와 한유는 둘도 없는 시우(詩友)가 되었고, 스님이었던 가도는 환속까지 하게 되었다고 한다.
퇴고란 좁게는 맞춤법에 맞게 어휘와 어구를 고치고 적절하게 문장을 가다듬는 것이지만, 크게는 작가의 의도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독자에게 바르게 전달하려는 것이다.
즉! 시원한 소통을 지나, 출렁이는 감흥까지 연결되도록 하는 것이다. 시의 퇴고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시어 한두 개를 바꿔도 시 전체의 미적 감흥이 확연히 달라진다는 것이다. 좋은 시는 단번에 독자의 미적 감흥을 자극하는 스위치를 갖고 있다. 시를 퇴고함에 있어 중요한 것은 한 시 안에 이 스위치를 장치하는 일이요, 이 스위치의 위치를 조정하는 일이다.
시의 방 한 칸이 환해지는 것은 방 어딘가에 스위치와 전구가 있기 때문이며 벽지만 아름다워도 시 전체가 화사해지겠지만, 순간적으로 독자의 내면을 확 뒤집어 놓는 미적 충격을 주지는 못하는데 이것을 나는 개인적으로, "스위치론"이라고 말한다.
어둡고 어수선한 초고(草稿)의 방 내부에 스위치를 달고 전구를 갈아 끼우는 일이 넓은 의미의 퇴고인 것이다.
그러면 당대의 최고의 문장가 한유는, 왜 '퇴(推)'보다 '고(鼓)'로 바꾸는 것이 낫겠다고 했을까? '민다'라고 쓸 때에는 바랑을 멘 스님이 날이 저물자 자신의 암자로 돌아온 것이다.
그러니 그저 밀고 들어가면 될 뿐이다. 문 여는 소리야 나겠지만 조용히 자신의 방에 들어가 짧은 독경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면 끝인 것이다. 시 속에 그려지는 풍경의 역동성이 작아지는 것이다.
하지만 '두드린다'로 바꾸면 늦은 밤 스님은 외딴 집이나 낯모르는 암자를 찾은 게 된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신을 끌고 나오는 동자승의 목소리로, 설핏 잠에 들었던 연못가의 새들도 잠자리를 고쳐 앉을 것이다. 또한 산짐승들도 몇 번의 울음소리를 내며 자신의 영역을 확인하려 할 것이다. 의심이 많은 작은 새들은 자리를 차고 올라 달빛을 가르며 날아갈 지도 모른다.
문을 열어주려고 동자승이 눈을 비비며 나올 것이고, 합장하는 작은 손에도 달빛이 어릴 것이다. 탑을 돌아 계단을 올라가는 스님과 동자승의 발등도 보일 것이다. 큰스님에게 조용히 여쭙는 동자승의 목소리가 있을 것이고, 그 다음엔 찻물 따르는 그림자가 암자의 단조로운 문살에 비칠 것이다.
글자 하나가 바뀌면서 시 속의 그림이 영화필름 돌아가듯 바뀌고 암자를 둘러싼 공간 전체가 입체적인 소리 통으로 바뀌는 것이다. 퇴고는 이런 것이어야 한다.
시의 혈관을 풀어주고 독자의 자유로운 상상을 자극하는 퇴고가 되어야 하며 독자의 상상력에 건전지를 끼워주고 태엽을 감아주는 퇴고가 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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