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야기

서울 수락산의 두충나무 숲

능선 정동윤 2011. 9. 20. 16:44

서울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여러 명산 가운데 동네 뒷동산 오르듯 가벼운 마음으로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수락산이 아닌가 싶다. 산이라는 곳이 그냥 스쳐 지나가면 모두 똑같은 나무요 풀이요 바위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갖가지 이야기를 품고서 귀 기울이는 사람들에게만 소근 소근 속삭여주는 이야기 주머니인지라 수락산 또한 아기자기한 이야기를 많이 품고 있다.

 

그 중 영원암의 두충나무 숲은 신비로운 전설 같은 이야기는 없지만 지금의 숲을 이루기까지 정성어린 손길이 있었기에 정감 가는 장소이다. 너른 바위 위에 위치한 영원암은 고려 태조 왕건이 왕위에 오르기 전 청년시절에 이곳에 머물렀다고 전해지는데 한 국가를 건설할 웅지를 품은 청년이 기개를 키울 만큼 바위가 크고 웅장하다.

 

그 영원암 황자굴 마당 좌우로 향나무가 있고, 영원암 우측 아래에 두충나무 숲이 있다. 수령 약 30년 되는 두충나무 35그루가 아주 건강하게 녹음을 이루고 있다. 이 두충나무 숲은 1982년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내신 황진경 스님이(72세) 일군 것으로 대다수의 스님들이 오랜 기도와 정진 생활로 인해 겪는 허리통증과 일반신도들의 두통 등에 좋다하여 두충나무 묘목을 구해 심은 것들이다.

 

그 당시 길도 닦이지 않은 험한 길을 혼자 맥고모자를 눌러쓰고 지게에 묘목을 짊어지고 영원암까지 옮기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어린 두충나무들도 스님의 정성을 알았는지 무럭무럭 자라 현재는 푸르른 녹음을 뿜어내는 숲으로 자라났다. 다음은 두충나무숲을 일구는 과정에서 있었던 에피소드이다. 스님이 지게로 묘목을 나르다가 "성수"라고 알려진 총각을 만났다. 17세 가량의 총각이 젊지 않은 스님이 혼자 지게로 묘목을 나르는걸 보고 "스님 제가 좀 나눠 지겠습니다."
"이왕 내짐은 내가 진 것이니 생각 있으면 저 아래 한 짐 남은 것이나 져 오게" 하여 인연이 닿아 그 총각은 영원암에 머무르게 되었다. 그 밖에도 스님은 암자 주변에 많은 나무를 심으셨다. 소나무, 향나무 두그루, 벚나무, 다래, 등등....

영원암은 위치가 위치인지라 지나가는 등산객이 많아 그 중 몇몇이 숲을 가꿀 요량으로 나뭇가지치기를 하려 하면


"놔두시오"

"아 스님, 그냥 놔두면 나무가 잘 자라지 않아요." 
"산꼭대기에서 나무가 키만 크면 바람에 넘어가는 법. 그냥 살게 놔 두시요"


했다고 한다. 가을 초입이 되면 두충나무 잎을 따서 잘 말렸다가 두충차를 신도들에게 권하곤 하셨다는데...

 

나무를 심은 건 진경 스님이고, 가꾸고 보살핀 건 그 성수 총각이었지요. 정말 말수가 없고 진국인 총각 이었습니다.
암자 앞, 두충나무 숲을 바라보며 바람에 쓰러진 오래된 나무 둥치로 조각을 했습니다. 얼마나 말이 없는지, 어느 해는 정월 초사흘날 눈이 많이 쌓여 (저는 정월, 첫눈이 오면 암자에 눈을 쓸러 오곤 했습니다) 영원암에 왔는데, 성수는 오른쪽 암자서부터 아래까지, 저는 왼쪽 칠성각에서부터 길 아래까지 눈을 쓰는데, 한나절이 걸리도록 말 한마디 없었습니다. 다 쓸고 우리는 서로 마주 보고 인사하고 돌아 왔지요. 그 후에, 작년에 와 보니 고향 해남으로 가고 없더군요.


누구하나 알아주지 않는 나무 조각을 그 곳에서도 계속 하고 있는지..... 이곳의 두충나무 숲은 저리도 푸르른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