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야기
아들의 생명을 대신한 느릅나무 이야기
능선 정동윤
2011. 9. 20. 16:45
머언 산 청운사(靑雲寺) 낡은 기와집, 산은 자하산(紫霞山) 봄눈 녹으면, 느릅나무 속잎 피어가는 열두 굽이를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
봄의 청취를 회화적으로 표현한 박목월의 시 '청노루'이다. 이 시에는 청노루의 맑은 눈에 투영된 느릅나무의 속잎이 그려져 있다. 이처럼 느릅나무는 옛 선조들의 정서와 잘 맞아 마을 길가나 들목에 많이 심어졌다는 느릅나무를 만나러 횡성군 두원리에 있는 수리공원을 찾았다.
느릅나무는 비교적 본연 그대로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는데다 기대 이상의 웅장한 자태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1982년 횡성군 보호수 4호로 지정된 이 느릅나무의 높이는 23m, 나무둘레는 5.4m로 400년 넘게 이 곳을 지키고 있다. 실제로 이 느릅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삼척군 하장면의 그것보다 풍채와 위용이 훨씬 대단하다고 한다.
이 나무에는 애잔한 전설이 담겨 있다. 자식을 그토록 원하던 충청도 부부가 두원리 느릅나무를 찾아가면 자식을 얻을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나무 아래에서 100일 동안 기도를 드렸더니 신기하게도 아들을 보았다. 그러나 3년 만에 아이가 이유를 모른 채 죽자 한 신령이 꿈에 나타나 두원리 느릅나무를 찾아가 보라고 일러주었다. 행여나 싶어 찾아가 본 나무는 아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죽어 있었고, 한 귀퉁이에서 새 잎이 돋아나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 말이 아이가 태어나고 죽은 한 날에 나무는 죽고 살아났다는 것이다. 이 후 자식의 생명을 대신에 다시 살고 있는 나무를 위해 마을 사람들은 이곳에 서낭지신을 모시고 매년 음력 정월 정일에 치성을 드리고 있다고 한다.
잘 정돈되어 있는 수리공원 내에 정자와 함께 웅장하게 서있는 나무를 보니 다시는 죽지 않을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한참을 바라보고 있으니 박수근의 '나무와 두 여인' 속의 것과 비슷해 보이는 것이 서민적인 정취가 느껴지기도 하고 느릅나무 아래에 모여 그네뛰기와 꽹과리 놀이판을 벌이며 정담을 나누고, 나무를 자식처럼 사랑한 우리 선조들의 모습이 그대로 그려졌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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