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등 506회
북아등 등불이 많이 희미해졌다.
연료가 많이 소진된 느낌이었다. 한 10년 같은 산을 오르내렸으니 매너리즘에 빠지고
새로운 연료의 보충도 여의치 않아 깜박깜박 경고등처럼 보인다..
그래도 매주 꺼지지 않는 것은 누군가 찾아와서 불 밝혀놓고 가는 친구가 있고
북한산도 닳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니 우리가 살아있는 한 북아등도 꺼지진 않을 것이다.
지난 주 505회는 오현이가 혼자 다녔갔다고 들었다.
북아등 까페에 알려 주거나 총무인 정선이 한테 통보하여 주면 좋을 듯하다.
오늘은 정선이와 둘이서 산행을 하였다.
8시 5분쯤 출발하여 수리봉 향로봉 옆을 돌아 사모바위까지 가서 능선을 종주하려다가
더위를 피하여 사모바위 근처에서 계곡의 삼천사 길로 하산 하였다.
수리봉 언덕을 오를 때부터 땀방울이 비 오듯 뿜어져 나오더니
금방 옷이 젖어 버릴 정도다.
아침 8시경이면 꽤 선선하리라 생각했었는데 산 속은 오히려 더 더웠다. 바람 한 점 없이.
앞으로 산에 올 땐 배낭을 가볍게 하여 물이나 과일 몇 조각만 준비해야겠다.
아침을 집에서 간단하게 요기 하고 산에서 4시간 등산을 해도 정오 무렵엔 산행을 마친다.
삼천사 계곡으로 내려오는 길에서 검은등뻐꾸기 소리가 온 산을 들썩거리며 들려왔다.
인간의 소음에 시달려 북한산을 떠난 줄 알았는데 어김없이 애절한 목소리로 들려왔다.
반갑고도 반가운 소리.
“카, 카, 카, 코” ““할, 딱, 벗, 고 ” “호호호, 호”
놀기 좋아하는 애미인지, 살아가는 일이 너무 바쁜지 제 새끼들을 남의 둥지에 맡겨놓고는
걱정이 많아서 봄이면 이렇게 산이 떠나가라 울어 제낀다.
군데군데 싸리나무의 보라색 꽃과 하얀 찔레꽃이 피어 더위에 지친 산꾼을 반갑게 맞아준다
장사익씨의 청승스런 찔레꽃이란 노랫가락이 저절로 떠올랐다.
꽃은 봄 한 철 몹시 바쁘다. 짧은 시간 안에 암술 끝에 꽃가루를 묻혀야 한다.
벌과 나비와 새들 나아가서는 바람까지 유혹해서 축축한 암술머리에 꽃가루를 받아야 한다.
향기로, 꽃의 색깔로, 꽃받침 등을 이용하여 최선을 다하여 생식을 도모하여야 한다.
우리는 식물의 생식기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며 즐거워한다. 그들은 바빠도 우리는 즐겁다.
계곡의 물소리가 하산길의 귀를 또 맑게 해 준다.
물은 바위에 날카로운 모서리에 그들의 온 몸이 부서지며 떨어진다.
부서지며 튀는 물방울에 음이온이 많아 우리에게 이롭다고 좋아한다.
폭포처럼 험하게 떨어질수록 물의 아픔과 비례하여 그 울음소리도 드높다.
계곡을 빠져나와 개울을 이루고 강을 만나 바다까지 가기란 얼마나 멀고 긴 여정인가
가다가 땅 속으로 스며들거나 공중으로 증발되면 깊은 바다로 향한 꿈은 사라지고 마는데.
삼천사 경내에서 부처님 머리를 닮은 하얀 불두화들이 탐스럽게 피어 있었다.
지난주 저 꽃들이 허리를 잘리어 신라호텔 예식부 테이블에 꽂혀서 스테이크를 썰며
커피를 마시는 우리들의 마음을 즐겁게 해 주었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생태계의 역동적인 삶의 노력이 우리에겐 음악으로 들리고
우아한 눈요기 감으로 보여주고 있다.
신을 대신하는 인간의 우월감에 조심스레 외치고 싶다. 공존!
북아등 506회 정선이와 둘이서 잘 다녀왔습니다.
-정동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