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詩 능선)

길 위에 있는 동안 행복하다/김재진

능선 정동윤 2011. 9. 23. 16:40

길 위에 있는 동안 행복하다/김재진

 

 

둥근 우주같이 파꽃이 지고

살구나무 열매가 머리 위에 매달릴 때

가진 것 하나 없어도 나는

걸을 수 있는 동안 나는 행복하다

구두 아래 길들이 노래하며 밟히고

햇볕에 돌들이 삥처럼 구워질 때

새처럼 앉아있는 후박꽃 바라보며

코끝을 만지는 향기는 비어 있기에 향기롭다

배드민턴 치듯 가벼워지고 있는 산들의 저 연두빛

기다릴 사람 없어도 나무는 늘 문 밖에 서 있다

길들을 사색하는 마음 속에 작은 창문

창이 있기에 집들은 다 반짝거릴 수 있다

아무것도 찌르지 못할 가시 하나 내보이며

찔레가 어느새 울타리 넘어가고

울타리 밖은 곧 여름

마음의 경계 울타리 넘듯 넘어가며

걷고 있는 두 다리는

길 위에 있는 동안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