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詩 능선)

위난한 시대의 시인의 변/홍윤숙

능선 정동윤 2011. 9. 25. 07:37

위난한 시대의 시인의 변/홍윤숙

 

 

일 천편의 애국시를 써도

그 나라 헌법의 단 한 줄도 고칠 수 없고

일 백권의 시집을 내도

구멍 난 가게의 한 귀퉁이도 메울 수 없는

위난한 시대의 무능한 시인으로 살아왔다

 

처음부터 모퉁이에 버려진 돌임을 알기에

세상의 빛나는 별들 사이에 끼여들 생각 없었고

스스로 힘 없음을 자조 하면서

돌아갈 곳은 시 밖에 없었다

시 앞에 서면 경건히 옷 여미고

한없이 충직한 가복이 되었다

 

시대의 아픔에 가슴 저려도

세상에 싸울 기개와 의지 없으니

시는 나 혼자 살아가는 나만의 놀이였다

다만 시에 의해 어지러운 세상 바르게 살아가는 길을

보았으나

그 길은 번번히 멀고 험난하여

무시로 절벽에 부딪혀 무릎 꿇었다

밤을 세워 배운 것은 한없이 낮은 자의 평안이었고

구도자의 마음으로 결핍과 충만, 구속의 자유

 

고통과 기쁨이 한 나무에 핀 두 송이 꽃임을 깨달았다

할 수 있다면 험난한 시대에 나와 함께 사는

앓는 이의 가슴에 한 자루 촛불이길 염원했지만

그 또한 주제 넘는 능력 밖의 일이었다

 

시는 일찍이 내 생을 관통해 간 한 발의 탄환이었고

나는 그로하여 일생을 앓으며

만신창이로 여기 서 있다

참담하고 아름답다 그것으로 족하다

먼 후일 문학사에 이름 석자 오르건 안 오르건

나와는 상관없는 내 존재 밖의 일이다

생각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