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선 정동윤 2011. 9. 28. 09:04

길/마종기

 

 

높고 화려했던 등대는 착각이었을까.

가고 싶은 항구는 찬비에 젖어서 지고

아직 믿기지는 않지만

망망한 바다에도 길이 있다는구나.

같이 늙어 가는 사람아,

들리냐.

 

 

바닷바람은 속살같이 부드럽고

저 물살들 서로 만나 인사 나눌 때

물안개에 덮인 집이 불을 낮추고

검푸른 바깥이 천천히 밝아왔다.

같이 저녁을 맞는 사람아,

들리냐.

 

 

우리는 처음에는 모두 새로웠다.

그 놀라운 처음의 새로움을 기억하느냐.

끊어질 듯 가늘고 가쁜 숨소리 따라

피 흘리던 만조의 바다가 신선해졌다.

 

 

나는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몰랐다.

저기 누군가 귀를 세우고 듣는다

멀리까지 마중 나온 바다의 문 열리고

이승을 건너서, 집 없는 추위를 지나서

같은 길 걸어가는 사람아,

들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