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詩 능선)
여, 라는 말/나희덕
능선 정동윤
2011. 9. 28. 09:13
여, 라는 말/나희덕
잊혀진 것들은 모두 여가 되었다
망각의 물결 속으로 잠겼다가
스르르 다시 드러나는 바위, 사람들은
그것을 섬이라고 부를 수 없어 여라 불렀다
울여, 새여, 대천어멈여, 시린여,검은여...
이 이름들에는 여를 오래 휘돌며 지나간
파도의 울음 같은 게 스며있다
영영 물에 잠겨 버렸을 지도 모를 기억을
햇빛에 널어 말리는 동안
사람들은 그 얼굴에 이름을 붙혀주려 하지만
그러기 전에 사라져 버리는 여도 있다
썰물 때가 되어서만은 아니다
며칠 전부터 물에 잠긴 여 주변을 낮게 맴돌며
끊임없이 날개를 퍼덕이전 새들 때문이다
그 젖은 날개에서도 여,라는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