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詩 능선)
산불/이재무
능선 정동윤
2011. 9. 28. 15:40
산불/이재무
산 하나 통채로 삼키고도
식지 않는 저 무서운 식탐을 보라
붉은 혀들이 빨고 할키고 뱉을 때마다
꾸역꾸역 연기 토해내며 진저리치는 산
불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검붉은 상흔
산불은 방심의 한순간에 피어나
몇십 년 혹은 몇백 년 가까스로 다스려 지녀온
살림의 목록들 흔적도 없이 지워버린다
불알 두 쪽만 달랑 남은 산 그러나
제 생을 차압해 간 불 원망하지 않고
적막 우려낸 이피리들 돋을 때까지
길고 긴 고생대의 시간 묵묵히 견딜 것이다
미친 사랑의 불길이여, 오거라
물기 바짝 말라 타기 좋은 산으로
내 기꺼이 너를 맞아 즐거운 밥이 되리니
건조한 반복보다는 황홀한 재앙 살고
싶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