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등514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혼자 오르는 산행이지만 대한민국의 상징 앞을 지나 엄숙하게 출발 합니다.
산행 시간이 8시 인지 9시인지 헷갈리지 않도록 하였으면 좋겠다.
지난주엔 9시에 산행을 했다고 들어서 총무한테 물어보니 회장한테 물어보라고...
언제나 마음 먹고 찾아가면 그곳엔 북아등의 누군가 있을 거라는 기대가 출발 시간을 몰라 망설이게 되었다.
공식적인 출발의 공지가 없었으므로 8시 조금 지나 홀로 출발하였다.
예전의 용화 제2매표소 옆을 지나니 계곡의 물소리가 시원스럽게 들려왔다.
오늘도 비가 내린다는 예보로 배낭커버와 우산을 준비하였지만 혹시나 하는 기대를 걸고 숲으로 빠져들었다.
오늘은 혼자라는 기분을 최대한 즐겨볼 작정이다.
나의 동행인 그림자도 소리없이 떠나버리니 배낭만이 유일한 도반이 되었고.배낭은 지금 첫 쉼터에서 가뿐숨을 몰아 쉬었다
후텁지근한 날씨는 땀의 배출을 2배나 더 흘리게 만든다. 충분히 쉬고 여유있게 오르자고 몇 번이나 다짐을 하고.
소나무도 더운지 끈적끈적한 송진을 땀처럼 흘렸고 신갈나무의 색깔은 초록으로 점점 더 짙어진다
멀리 보이는 풍경은 흐려서 보이지 않고 하늘은 조금씩 어두워오며 홀로 걷는 산꾼을 불안하게 만든다.
땀방울이 땅바닥에 뚝뚝 떨어지고 머리를 힘껏 흔들면 후두룩 땀방울들이 날아갑니다.
족두리봉 뒤쪽 능선으로 올라가다가 잠시 쉬었다. 소나무 공기뿌리에 앉아 적막한 산에서 깊은 생각에 빠진다.
북아등 일요일이 이렇게 희미해지면 다시 오기 어렵겠구나.한두명의 중심은 있어야하는데 랜드마크가 사라져버린 기분이다.
아내는 토요산행을 권하며 일요일은 교회에 가자고 오랫동안 기도하고 있다고 했지만
차일피일 미루고 왔는데 이제 아내의 기도에 응답할 시기가 다가오는 것 같다.
외로운 산행을 지탱해주고 늘 바닥에서 고생만 하는 등산화에게도 오늘은 고마운 눈길을 보내며 위로를 전한다.
안전과 건강의 지킴이 역활을 가장 확실하게 하지만 어느날 미련없이 쓰레기통으로 던져지는 등산화,
소모품이 되어 버려질 때까지도 불평이나 반항 한번 하지 않는 무서운 침묵의 동행.
이 길로 쭉 올라가면 족두리봉 뒤편 멧등에 도달한다.더위에 주변의 나무들과 풀들도 호흡이 가뻐보인다
이때까지도 마주치거나 추월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공기는 비등점을 향해 부풀어 오른다.덥다 더워.곧 터질 것 같다.
능선 가운데에 나와 같이 심심한 바위에 앉아 잠시 숨을 골랐다.바람은 선택받은 사람에게만 안기는가 보다
이렇게 향기롭고 이렇게 시원하고 이렇게 고마운 바람이 온 몸을 식혀준다.바람에 동행을 부탁하지만
바람이 순순히 들어줄지 의문이다.계산이 빠르고 영악하여 필요에 따라 순발력을 잘 발휘하는 바람이니 말이다.
향로봉 옆에서 바위 틈을 비집고 홀로 선 소나무를 본다.불필요한 가지를 모두 잘라내고 최소한은 잎만으로 생존을 확인한다.
다만 저 소나무가 바라보는 방향이 남쪽이라 우리집까지 닿았으면 좋겠다.메마른 바위 틈에 떨어진 솔방울 하나가
풍진과 이슬을 모아 싹을 틔우려고 얼마나 많은 고민과 남모르는 고통을 견뎌냈을까
이제는 조용히 산 아래 굽어보며 관망을 세월을 보내는 소나무의 모습이 가슴에 쑥 들어온다.
비봉 능선에 올라서니 빗방울이 몇방울씩 떨어지더니 본격적으로 바위를 적시기 시작하였다.
멧등을 걸어가니 배낭도 모자도 젖는다.
당초 계획은 청수동암문 지나 대남문까지를 염두에 두었는데 굵어지는 빗방울이 방향을 틀게 한다.승가사 길로.
얼려온 물과 과일로 갈증은 달랬지만 펴놓고 무얼 먹을 기분은 전혀 아니다.좀 청승스럽지만 혼자 먹는 걸 피하진 않는데
비를 무릅쓰고 배를 채울만큼 배가 고프지 않으니 조금은 기품있게 먹어야지.참자.
승가사 내려오는 길에 큰 바위 아래서 배낭과 우산을 내리고 조용히 빗소리를 들어본다.
적적한 산에 빗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흔들리지 않고 핀 꽃이 어디 있으며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을까? 젖고 흔들리며 살아온 삶이 아닌가.
토요일에 북한산을 오르고 일요일엔 예배당으로 집사람 손잡고 다녀볼까?
다행히 토요일에도 북한산을 즐기고 있는 친구들이 있으니 오늘처럼 외롭지는 않을 것이다.
나무도 젖고 바위도 젖고 산길도 젖었다.이런 저런 생각에 내 마음도 젖어 내린다.
나만의 북아등 시즌 1을 마감하고 토요 북아등으로 시즌 2로 참가해 볼까?
능선에서 불어주던 영악한 바람은 어떤 조언을 해 줄까.
다시 빗속으로 들어갔다.우산을 때리는 빗소리가 음악처럼 들린다.약수터 근처에서 계곡을 피해 큰길로 내려왔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총무님,오늘은 혼자라도 북아등을 했으니 북아등 횟수를 이토사일 산행으로 대체하지는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무궁화꽃 앞에서 엄숙한 마음으로 아내의 기도에 응답한다.토요일에 북아등을 하고 일요일엔 교회에 갈까한다.
오랫동안 일요일 아침을 깨워 북한산을 찾았지만 이제는 토요일 아침을 깨워 볼까.
무궁화꽃을 보고 시작한 등산, 무궁화꽃 앞에서 마무리 한다.
비내리는 일요일 북한산이여.안녕.
정든 북아등, 혼자서 무거운 마음으로 다녀왔습니다.
-정동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