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詩 능선)
초파일 밤/김지하
능선 정동윤
2011. 10. 2. 10:41
초파일 밤/김지하
꽃 같네요
꽃밭 같네요
물기 어린 눈에는 이승 같질 않네요
갈 수 있을까요
언젠가는 저기 저 꽃밭
살아 못 간다면 살다 못 간다면
황천길에서만은 꽃구경 할 수 있을까요
삼도천 건너면 저기에 이를까요
벽돌담 너머는 사월 초파일
인왕산 밤 연등 연등 연등
오색 영롱한 꽃밭을 두고
돌아섭니다
쇠창살 등에 지고
침침한 감방 향해 돌아섭니다
굳은 시멘트벽 속에
저녁 거리는 교도관의 발자국 울림 속에
캄캄한 내 가슴의 옥죄임 속에도
부처님이 오실까요
연등이 켜질까요
고개 가로저어
더 깊숙히 감방 속으로 발을 옮기며
두 눈 질끈 감으면
더욱 더 영롱히 떠오르는 사월초파일
인왕산 밤 연등 연등 연등
아아 참말 꽃 같네요
참말 꽃밭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