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 길(山 능선)

토요 북아등 524 -2011.10.1

능선 정동윤 2011. 10. 3. 09:08

먼 후일 지금처럼 혼자 등산하는

이런 날이 자주 올 지도 몰라

추억을 곱씹으며 산을 오르는 일 같은 거,

구기동 계곡의 각진 바위 짚어가면서

한 결음 한 걸음 대남문 향하노라면

함께 걸었던 친구들의 모습이 사진처럼

스치고 지나갈 지도 몰라

기쁘고 슬픈 일 나누며 보냈던 친구들

조금씩 희미해지고 아련하게 생각될 즈음

산길은 벅차고

오르는 시간은 점점 길어지기도 하겠지

 

추억처럼 구기동을 출발하여 대남문,

청수동암문 지나 승가봉,

사모바위 지나 비봉,

향로봉 아래에서 걷기 좋은 탕춘대 능선,

불광동으로 빠져 나왔다

탕춘대 능선 아래의 알탕 하던 계곡은

철 지난 해변

비어있는 폐광 촌

추수 끝난 들판

메마른 나의 가슴

유행 지난 휴대폰처럼

쓸쓸하고 까칠하고 황량하고

오랫동안 침묵하고 있어

눈길이 닿기 무섭게 고개 돌리고 만다

 

8 30분 구기동 출발하여 1140분 불광 역.

서두르면 점심은 안산에서 같이 먹을 수 있겠다

암벽에 매달린 친구들을 향해

반주용 막걸리 2병 주문 받고 3병 사서 도착하니

암벽 오르기도 파장 분위기,

미래의 스크린에서 벗어나 출렁이는 현실의

즐거움 앞에서 막걸리는 부족하고 웃음은 넘쳐났다

불이토 친구들도 안산 순례를 마치고 합류,

지글지글 낙지볶음과 돼지고기 푸짐한 김치찌개

소주도 막걸리도 주는 대로 술술술.

(안산 암벽 코스를 설계하고 개발하고 교육하는

권기열 등산학교장께서 주변을 다듬고 있었고

영묵이는 예를 다해 소개시켜 주었다)

 

이승의 사람 사는 모습들이 연출되고

우리는 회비를 만원씩 내고

맥주 집에 와서 한바탕 더 떠들다 헤어졌다

 

무악재에서 다시 서울역까지 걷기로 마음 먹고

지하도를 뻐져나왔다. 차를 기다리는 친구에게

같이 걷기를 제안하여 둘이서

무악재를 넘고 은행나무 가로수를 만지며 천천히 걸었다.

은행잎을 모아 양파자루에 가득 담아

집안에 두면 바퀴벌레 걱정은 끝.

모기도 파리도 달라 들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다

식당 하는 친구들은 참고 바란다.

독립문 서대문 서울역으로 이어지는

초가을 오후의 도심 길은 한적하고 여유로웠다

술에 취해 약간은 흔들리며 조금은 맥을 놓으며

걷고 걸어서 집으로 걸어갔다.

나는 취했는데 친구는 취하지 않았다.

술을 즐기지 않은 친구야 떠들어서 미안하다.

독립문 공원 느티나무 아래서

따뜻한 커피를 나누어 마셨다

 

서울역에서 친구는 1호선을 타고 떠났고

귀가하여 배낭을 정리하면서 커피를 담은 보온병을

그 공원에 두고 온 사실을 깨달았다.

자꾸만 흘리는 나이, 술에는 약해지는 나이,

미래가 쏜살같이 달려오는 나이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마라.

 

토요 북아등 524 잘 다녀왔습니다

 

-정동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