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당선작

창고 대 개방/방수진 2008/중앙일보

능선 정동윤 2011. 10. 4. 21:47

창고 대 개방/방수진

 

1.

선전물이 붙는다 오늘 하루 뿐이라는 창고 대 개방

준비 없는 행인의 주머니를 들썩이게 만든다 간혹

마음 급한 지폐들이 앞사람 발뒤꿈치를 따라가고 몇몇은

아예 선전물처럼 벽에 붙어버린다

떨어진 상표딱지,올 풀린 스웨터, 비뚤거리는 바느질까지

다들 제 몸에 상처 하나씩 지닌 것들이다

습기 찬 창고에서 울먹이는 소리는 여간해서 지상으로 들리지 않는 법

 

2.

조금은 잦은 듯한 창고 대 개방이 우리집에도 열린다

일 년에 다섯 번 혹은 예닐곱으로 늘어나기도 하는 그날엔

아버지 몸에서 하나둘씩 튀어나오는 물건들을 받아내느라 힘들다

하지만 나는

집안 여기저기서 날아오는 냄비며 플라스틱 용기들이

조금씩 떨고 있는 것을 보았다

때론, 손끝에서 퍼진 그 울먹임이 아내의 머리를 찢고

다리에 멍울을 남기고 깨진 도자기에 발을 베게 만들지만

아버지의 창고 그곳에서

누두도 딸 수 없었던 창고의 자물쇠가 서서히 부서지고

서로 쓰다듬을 수 없어 곪아버린 물집들이

밤이면 울렁이는 속을 부여잡고

제 심장소리에도 아파하고 있을 것이다

 

3.

아직, 연고 한 번 바르지 못한 상처들로 창고가 북적거린다

창고의 문을 열어두는 이유는

더는 그것들을 보관할 수가 없어서가 아나라

서로 다리 한 쪽씩 걸치고 있는

우리들의 절름발이 상처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몇 번의 딱지가 생기고 떨어졌어도

한 번 베인 자리는 쳐다보기만 해도 울컥하는 법이지

그래서 창고 개방 하는 날

거리에서는 저마다의 창고에서 빠져나온

우리들이,

눈송이처럼 바닥을 치며 쌓려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