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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 밖, 풍경의 빈 곳/정은기 2008/한국일보

능선 정동윤 2011. 10. 5. 08:36

차창 밖, 풍경의 빈 곳/정은기

 

 

철길은 열려진 지퍼처럼 놓여 있다. 양 옆으로

새벽마다 물안개를 뱉아내는 호수와

<시골 밥상>이니 <대청 마루>니 하는 간판이 가든촌이

연대가 다른 지층처럼 어긋나 있다

등 뒤로 떨어지는 태양이 그림자로 가리키는 북동의 방향으로

질주하는 춘천행 무궁화 열차

지퍼를 채우듯 튿어진 자리를 꿰매며 달려가는 것은 열차의 속도였다

 

기차의 머리가 향하는 방향을 보여주는 것은 긴장을 잃고 곡선으로

휘어지는 구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곳에 자리를 튼 마을이 호수에 기대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가정식 백반>의 가정을 찾아 속도에 몸을 싣고 거꾸로 달린다.

이곳에서는 두고 온 먼 곳의 시간을 추억하는 일도

먼 발치에서 바라보는 풍경을 관람하기 위해 돈을 지불하고

박물관이나 찾는 일만큼이나 자본주의적이다

직서의 끝에는 목적지가 있어

마을은 머지않아 먼지의 전시관이 될 것이다

곁길로 샐 수 없는 것이 슬프다는 것을 호수는 알고 있을까

튿어진 굴곡을 따라 살을 드러낸 풍경의 허리를 휘감고

돌아가는 기차, 가끔씩 창밖으로

활처럼 휘어지는 기차의 곡선을 본다면 

퇴락을 거듭하는 호수가 옆, 한 마을이 생겨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