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당선작
오늘은 달이 다 닳고/민구 2009/조선일보
능선 정동윤
2011. 10. 5. 10:00
오늘은 달이 다 닳고/민구
나무 그늘에도 뼈가 있다
그늘에 셀 수 없이 많은 구멍이 나 있다 바람만 불어도 쉽게 벌어
지는 구멍을 피해 앉아 본다
수족이 시린 저 앞산 느티나무의 머리를 감기는 건 오랫동안 곤줄
박이의 몫이었다
곤줄박이는 나무의 가는 모근을 모아서 집을 짓는다
눈이 선한 저 새들에게도 바람을 가르는 날카로운 연장이 있다 얼
마 전 죽은 곤줄박이에 떼지어 모인 개미들이 그것을 수거해 가는
걸 본 적이 있다
일과를 미친 새들은 둥지로 돌아와서 달이 떠오를 무렵 다시 하늘로
솟구치는데
이때 달은 비누다
뿌리가 단단히 박혀서 번뇌만으로는 달에 못 미치는 나무의 머리
통을 곤줄박이가 대신, 벅벅 긁어주는지, 나무 아래 하얀 달 거품이
흥건하다
오늘은 달이 다 닳고 잡히는 족족 손에서 빠져나가 저만치 걸렸나
우물에 가서 밤새 몸을 불리는 달을 봐라
여간해서 불어나지 않는 욕망의 칼,
부릅뜨고 나를 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