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당선작

폭염/박성현 2010/중앙일보

능선 정동윤 2011. 10. 6. 08:10

폭염/박성현

 

 

아버지가 대청에 앉자 폭염이 쏟어졌다

족제비가 우는 소리였다.아버지는 맑은 바람에

숲이 흔들리면서 서걱서걱 비벼대는 소리라 말한다

부엌에서 어머니와 멸치칼국수가 함께 풀어졌다

땀을 말리며 점심을 먹는다

아버지의 눈을 훔쳐본다

여자의 눈을 쳐다보면 눈이 뽑힌다는

아랍의 무서운 풍습을 말한다. 석류가 터질 때

아버지는 다시 아랍으로 갔다.그리고 어머니는

빗장을 단단히 채우고 방을 나오지 않았다

세밑까지 어머니는 화석이 되어 있을 것이다

기다리면 착해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무도 믿지 않느다

내게는 마음이 없고,문도 없었던 것이다.

 

 

한낮/박성현

 

버스가 서울 역사 박물관 앞에 멈췄다. 된장국 냄새가 솔깃하다. 골목을

돌고, 다시 골목 끝으로 가면, 저편에 집 한 채 기우뚱 있다. 연산홍이 피고,

떨어졌다가 다시 피는 5얼에도 그 집은 비스듬이 서 있다

 

녹슨 파란색 철제 대문을 지나면 텃밭 같은 마당에 큰 개 한 마리 햇볕을

쬐고 있다. 몇몇 남은 노송이 한 세월 돌아가면서 입고 다녔던 장삼처럼 곱게 펴져 있다

시멘트 담 가까이 돋아난 풀잎이 흔들린다. 허기 진 마음이 풀잎을 따라 바닥으로

잠긴다. 풍경 소리가 난 듯 했으나 바람이 항아리를 울리고 간 소리다. 항아리에는

된장이 익어 간다. 대청 마루에 모시 적삼을 입은 노부부가 나란히 세모잠을 잔다

수백 년 전의 기억은 모조리 잊혀지지만 한낮에는 늘 되살아 난다

 

우체부 김씨가 등기소포를 가지고 초인종을 누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