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당선작

그녀의 골반/석미화 2010/매일신문

능선 정동윤 2011. 10. 6. 08:24

그녀의 골반/석미화

 

1.

나비 꿈을 꾸고 엄마는 날 낳았다 흰 꿈, 엄마는 치마폭에 날 쓸어

담았다 커다란 모시나비, 손끝에 잡혔다가 분가루 묻어 나갔다 날개 끝에

고인 몇 점 물방울 무늬, 방문 밖으로 날았다 돌담에 피는 씀바귀꽃

그늘을 옮겨 왔다 나비 날개엔 먼지가 끼지 않았다 한 꿈, 계단 입구에서

두 날개 맞접고 오래 기도하고 있었다 환한 꿈, 나는 오래 전

그녀의 골반을 통과한 나비였다

 

2.

초음파상 골반뼈는 하얀 나비 같았죠 그녀의 골반뼈에 종양이

생겼을 때 보았던 그 나비, 그러니까 꺼먼 엉덩이살 안에 나비

날개가 굳어 있었던 거죠 나는 잘 벌어지지 않는 날개 사이로 미끄

러져 나왔던 거죠 나도 작은 나비 모양 엉덩이를 달고 나왔던 거죠

그러니까 그녀가 힘겹게 좌판에 쪼그리고 있었을 때, 날품팔이, 품앗이

할 때 날고 있을 나비, 그러니까 내 속을 빠져 나간 어린 나비는

지금 내 앞에서 폴짝폴짝 날아오르고 있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