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 길(山 능선)

토요 북아등 525 후기

능선 정동윤 2011. 10. 9. 20:37

 

지난 주는 토요 북아등 멤버들이 안산에서 암벽 연습을 하였기에 혼자서 구기동에서 불광동을 거쳐

북한산을 걸은 뒤에 안산으로 갔었다 

오늘은 근엽이와 둘이다

 

북아등 공식 카메라맨과 단둘이 한편의 다큐멘타리 찍는 기분으로 가을산을 섭렵하며 동행하여 걸어 본다.

불광역에서 9 10분에 기다림을 끝내고 배낭을 업었다.약속 시간에 도착하지 못해 마음 조이는 일보다

조금 일찍 나와 느긋하게 기다리는 내 오랜 습관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오늘 코스는 등산 도중에 확정 되었지만 불광동 ,족두리봉 ,향로봉, 비봉,사모바위 승가봉, 청수동암문(점심)

,북악산 여래사,김신조 루트 갔다 되돌아 나옴,북악 스카이웨이 도보길, 팔각정,창의문(자하문),인왕산 윤동주 언덕길

,인왕산 서울성곽,인왕산 치마바위(정상),기차바위,현대 아파트,홍제역에서 마무리 하였다.

 

오전 9시경에 출발하여 오후 6시 경에 끝맺은 뒤에 홍제역 근처 순댓국 집에서 소주 한 잔 곁들여 뒷풀이 하였다.

허세와 객기를 접고 군더더기 없는 산행으로 한 시간을 걷고 잠시 휴식하는 방법으로 걷고 또 걸었다.

단풍이 들기도 전에 일찍 떨어진 마른잎들이 산길엔 꽤 많이 떨어져 있었다.은퇴 시기가 너무 빨라....

우리는 손에 잡을 수 없는 어떤 행복을 찾아 가는 길이 아니라 우리 몸을 감싸고 불어주는 바람을

고마워하고, 반짝 빛나는 단풍잎 흔들림을 즐기며 마냥 오르기보다 깊이 깃들어 가며 계절을 음미하였다

 

등산 초입의 길섶엔 온통 서양등골식물의 하얀 꽃이 지천으로 보여 걷는 내내 아쉬움이 남았다.

우리나라 토종의 야생화들을 밀어내고 산 아래를 맹렬하게 점령한 뒤에 지배자처럼 바람결에 살랑거렸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가을 산길은 외래종에 침범 당하여 영토를 내어주고 어쩔 수 없이 지나치는 것이

약이 올라 몇 번이나 뿌리째 뽑아버린 적도 있지만 요즘은 방관하고만 있으려니 더 슬프다.

공존이 아니라 적자생존의 밀림의 법칙에서 귀한 토종식물들이 멸종되어 버리니 더욱 안타까운 일이다.

 

상념에서 벗어나 족두리봉 아래 용소나무에서 잠깐 머물렀다. 소나무는 보통 200~300년 정도 산다고 하는데

이 용소나무는 몇 살이 되었는지 궁금하다.오늘처럼 때묻지 않은 하늘을 바라보며 이따금 기웃거리는

구름들의 방문을 반기며, 속 깊은 계곡을 바라보고 든든한 족두리봉 절벽을 배경으로 서서 긴 세월 살아오며

끝내 비밀을 지켜주는 친구들의 우정과 더불어 이곳을 지나가는 우리에겐 더욱 빛이 나고 돋보였다.

 

가을이라고는 하여도 아직 햇살은 강렬하였고 우리는 능선보다는 그늘이 드리워진 숲길 걷기가  좋았다

조금씩 붉게 물둘어 가는 단풍나무는 큰 나무 아래나 나무와 나무 사이에 있을 때 단풍이 곱게 든다고 한다.

햇볕이 많으면 오히려 단풍 색깔이 곱지 않다고들 한다. 단풍나무는 단풍은 아름답지만 가을 낙엽이 질 때에도

낙엽이 되지 않고 마른 잎으로 겨울을 넘기고 이듬해 새 잎이 돋아나서야 이파리가 떨어진다.

처음엔 가야 할 때 가지 않는 나뭇잎이 싫었지만 그것은 인간의 관점이고, 단풍나무는 자기가

가야 할 때를 이듬해 봄으로 정해 놓고 새순이 돋으면 어김없이 떠나가고 있는 것을 한참 뒤에야 알았다.

 

향로봉 오르는 길은 언젠가 조선일보의 새해 사진으로 북아등 친구들이 찍혀 진 그 코스로 올라가니

인적이 드물어 잠시나마 여유로웠다. 불광역의 출발은 마라톤의 출발 지점처럼 붐비고 줄을 지어 몰려 왔지만

도착점으로 각각 흩어지고 하산의 시간이 나누어져 단출하게 마무리 한다. 그런 생각을 하며 비봉과 사모바위

승가봉을 지나 가니 슬슬 배가 고파왔다. 일단 청수동암문까지 가기로 하고 부지런히 걸었다.

 

청수동암문을 오르기 전에 예전의 옹달샘에 있던 근처에 자리를 잡고 배낭을 풀었다. 직박구리 한마리가 앉았다 갔다

요즘엔 친구들과 만나 정치, 경제, 권력의 뒷얘기보단 일상의 자잘한 이야기를 나누고 술잔 자주 부딪히고 기울이며 

모아둔 수다를 늘어놓고 웃으며 떠들면서 스트레스를 날려야 좋다는데 공감은 하며 도시락을 펼쳤다.

오랫동안 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건강하게 사는 게 중요하다며 화장실에서 넘어져

엉덩이뼈가 시원치 않다는 근엽이 얘기도 들으며 일어났다.

 

대남문 지나 구기계곡으로 하산은 좀 진부하다 싶어 대성문으로 하산하자는 내 의견에 금방 동의하고 성곽을 따라

숨가쁘게 계단을 올랐다.계단을 다 오르면 전망대처럼 시야가 확 트인다. 눈 아래 풍경을 바라보며

벼랑 아래로 떨어져 다쳐 본 사람은 건강하게 걷는 사람들이 얼마나 부러운지 잘 안다.

삶의 질곡에 닿았다가 벗어나본 사람들은 평범한 일상의 웃음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잘 안다.

대성문 지나고 형제봉 봉우리 위에서 건너편 북악산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을 텐데 하고 근엽이가 운을 뗐다.

두번 째 형제봉 봉우리에서 올라오는 산객을 만나 잠시 환담하며 북악산 길을 물으니 지금 그곳에서

오는 중이라며 친절하게 답변해 주었다. 북악산을 거쳐 인왕산까지 가기로 최종 목표를 정하였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주로 뒷편에서 사진을 찍던 작가는 앞장 서서 성큼성큼 힘주어 걷는다.

 

북한산을 떠나 북악터널 위를 지나 여래사에 도착했다.드디어 북악산에 들어왔다.

내심으로는 숙정문을 지나 말바위 안내소까지 생각하였으나 우리는 팔각정을 목표로 하였고

그곳에서 갈증난 에너지의 공급을 받기로 하였다. 오후의 서쪽으로 가는 길은 해를 안고 가는 길이다.

최근 북악 스카이웨이도 사람들이 트래킹 할 수 있도록 잘 정비해 놓았다.젊었을 땐 신혼여행 단골코스 였었지.

꽤 멀고 긴 북한산을 걸어온 탓이라 좀 쉬운 길로 쉬어가면서 걷고 싶기도 하였다.

팔각정에 도착하여 물을 실컷 마시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이곳에서 오늘 걸어온 북한산을 조망해 보니

톱니같은 능선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멀리서 바라보니 새삼 잘 걸어준 다리와 발에 대한 고마움을 느낀다.

 

다소 쉬운 길로 북악산을 통과하고 자하문이라고도 불려지는 창의문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윤동주 언덕이 있는 곳으로 올라 인왕산으로 올라갔다. 인왕산은 지금 서울 성곽

보수 작업을 한창 진행하고 있어 인왕산 정상에서 독립문 방향은 통제되고 있었다.

인왕산 정상인 치마바위에 올라 경복궁을 향해 치마를 흔든 조선의 역사에 잠겨 마음을 놓고 쉬었다가

올라온 방향으로 되돌아 물러 나와서 기차바위 쪽으로 내려와 소나무가 우거진 숲을 통과하여

홍제역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어느덧 해는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였고 붉은 노을이 얼굴에까지

번져오는 것을 느끼며 부지런히 소나무 사이로 걸어내려 왔다.

나무들 사이로 지는 해를 바라보는 여행같은 산길을 나이가 들어도 오랫동안 걷고 싶다.

 

긴 산행에 맛없는 음식이 없고 달지 않는 술이 없었다.

내 안에 아직 산길을 걸을 수 있는 에너지가 남아 있고,긴 산행을 감당할 체력이 있고

더불어 걸을 수 있는 친구들이 있는 한, 지는 저녁해는 언제나 황홀하게 비춰줄 것이다.

 

걷고 또 걷고 원 없이 걸어 보았다. 동행한 친구에게 고마움을 보낸다.

토요 북아등 525 참 잘 다녀 왔습니다.

 

-정동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