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市 능선)
퍽 울적 하더군
능선 정동윤
2011. 10. 24. 09:43
퍽 울적 하더군/정동윤
퍽 울적 하더군
너무 걱정할 것까지는 없다고 힘 빼고 얘기하는데,
당뇨와 고혈압 증세가 눈에 띄어
술은 그만 마셨으면 좋겠다는 그 소릴 들으니
퍽 울적 하더군
뭐 술을 좋아한다고 떠들고 다니거나 술병 사 들고
귀가하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건네는 술잔을 거절해 본 적은 별로 없었어.
채우면 비우고 또 채워지면 비워지는 술잔이
어떻게 미울 수가 있겠어.
그런데 그 술잔을 들지 말고
들었으면 그냥 내려놓으라는 거야
몸에서 신호를 보냈어.
가끔은 어지럽게 허공에 붕 뜬 기분을 자주 느꼈거든
자리에 누울 때도 띵한 느낌이 들기도 했고.
이것들이 당뇨와 고혈압의 연합군의 공세 신호였어.
이것저것 적에 대한 동태와 정보를 파악해야 될 것 같아
요즘 들어 지는 꽃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구석진 곳에 자리 잡은 거미줄에 대한 상념들이 깊었어.
기쁨보다는 아픔이, 아픔보다는 눈물이 많았고
눈물보다는 희망이 많았기에 견뎌온 세월이 아니었나?
그래도 내 몸은 견디기 어려웠던 모양이야
평생을 혹사당했던 내 몸이 아프다고 신호를 보냈는데
모른 척 할 순 없잖아, 그 몸뚱어리도 존중을 받아야지
배가 부르면 감성은 깊게 가라앉지만
술에 취하면 그 감성들이 조금은 돋아나는 기분이 들었는데,
이제 그만 마시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울적 하더군
퍽 울적 하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