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선 정동윤 2012. 3. 24. 22:28

 

 

 

 

 

 

 

 

 

 

 

 

가는 겨울이 봄에 던져주는 축복인가 질투인가.

매서운 바람, 깜짝 눈발, 시리도록 푸른 하늘 그리고 눈부신 햇살이

온 산을 감싸고 있었다

포근하고 따뜻한 봄볕과 근질거리는 꽃망울을 기대하고 오른 산행에서

겨울과 봄을 한꺼번에 품고있는 변화무쌍한 날씨를 만났다.

 

수리봉에 오를 때만 해도 산 아래 하얗게 빛나는 도시를 조망하고 먼 가시거리를 만끽하며 

봄을 시샘하는 꽃샘 추위의 톡 쏘는 애교 정도로 대소롭지 않게 생각하였는데

수리봉을 지나고 향로봉에 이르는 순간 겨울의 중심에 들어온 기분을 확 느끼게 되었다.

봄 속의 겨울일까? 겨울의 독한 뒷모습일까?

산은 겨울 특유의 눈꽃을 피우며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최고의 자태를 보여주었다.

바짓단에 묻어오던 먼지 걱정도 털어 버리고 질척거리는 춘니와 등산화에 묻은

흙투성이를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산은 청결하였고 순백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었다

산꾼들은 뜻밖에 3월의 눈꽃 축제를 담아가느라 스마트폰, 휴대폰, 디카 등을 분주하게 동원하였다.

 

이렇게 공기는 겨울을 가득 채우고 있지만 땅 밑에서는 봄을 끌어 올리기 위한 뿌리들의

뜨거운 열정이 힘든 노동을 마다하지 않고 땀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봄으로부터 겨울의 한 복판으로 들어와 비봉을 지나고 사모바위를 거쳐 승가봉에 도착했다

그리고 북한산의 꼬마능선, 북쪽으로 펼쳐진 아이능선, 북아(北兒)능선으로 어렵게 진입하였으나

10cm 정도 쌓인 폭설에 진로를 헤쳐 나갈 수가 없었다. 엽 별장에는 차가운 바람만 몰아쳤고

길을 숨겨져 보이지 않았으며 낭떠러지와 함정이 도사리고 있을 것 같아 움추러 들었다.

 

바람을 피할 수 있는 바위 아래, 어렵게 좁은 밥상를 폈는데 나뭇가지에 앉은 눈송이들이

수시로 밥상을 찾아왔으며 더운 밥과 국으로 얼른 요기를 하고 겨울의 한복판을 빠져나왔다.

방풍복 후드를 때리는 눈송이, 바람이 시켰을까, 햇살이 시켰을까 그 달그락거리는

겨울 알갱이들의 소리들을 음악처럼 들으며 승가사로 하산을 결정하였다.

 

겨울에서 벗어났다는 기분은 승가사 하산 길로 접어들면서부터 였다.

남쪽 사면은 이미 눈이 녹아 나뭇가지엔 물방울이 맺혀 떨어지고 산길은 흠뻑 젖어있었다.

능선에서는 도처에서 미끄러움에 넘어지는 비명소리와 매서운 바람 소리에 긴장하였는데

이곳으로 들어서니 범의 굴에서 벗어난 뒤의 안도감처럼 계곡의 물소리가 아늑하게 들려왔다.

비바람 뒤에 잔잔해진 바다의 수면처럼 안락함과 포근함을 느끼며 굳었던 손가락 끝에도

피가 돌고, 수시로 흘러 내리던 콧물도 멈추었다.

 

드디어 천수는 당구를 위한 인원 점검을 시작하였고, 우리들은 느긋한 하산을 즐기게 되었다.

꽃샘 추위는 겨울과 봄의 인수인계, 가장 무서운 계절과 가장 온화한 계절의 절충지대,

한꺼번에 두 계절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모습들 연출하며 계절이 지나가고 있음을 알려준다.

춘분부터 시작되는 봄 속에서 또 한 번 겨울의 진수를 맛보며

북아등 549회차 잘 다녀 왔습니다.

 

-정동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