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 길(山 능선)

방태산 1박 2일

능선 정동윤 2012. 7. 23. 12:25

 

1.방태산 산행

오랜 가문으로 말라가던 산야가 장마와 태풍으로 충분히 해갈되었고

뿌리까지 흥건하게 물을 보관하던 나무들은 싱싱하게 여름을 물들이고 있는 7월21일,

우리들은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소재 방태산을 찾아 갔다.

낚시용 뜰채처럼 형광색 팬으로 그려놓은 방태산 작은 지도를 보며

가볍게 한 바퀴 돌겠다고 생각했지만

산은 1,444미터의 높은 산이고 숲이 무성한 흙산으로 결코 만만하지 않을 것 같았다.

초입부터 삼거리까지 약1키로미터 구간은 넓은 계곡 옆으로 따라가며 수심 깊은 물을 보며 걸었다.

삼거리에서 주억봉을 먼저 오를까 ,매봉령으로 먼저 오를까 의논하다가

다소 완만하다는 매봉령으로 방향을 잡았다.

흙산 특유의 무성한 산림은 어제까지 내린 비로 습기를 잔뜩 머금고 있어서 후텁지근한 날씨였지만

경쾌한 계곡물 소리와 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다량의 산소들이 기분 좋은 청량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최근 몸이 불어난 동우와 주섭이가 뒤로 쳐지면서 영문이도 함께 하산을 고민하고 있다가

맨 나중에 출발한 봉일이와 만나서 다시 오르기 시작하였단다.

체력을 앞세우며 초반부터 기세등등하게 앞서가는 친구들을 통제하지 않으면

산행은 소규모의 대오로 잘게잘게 분산된다는 것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지만

먼저 가야 하고, 빨리 가야만 속이 시원해 하는 친구들은 늘 있게 마련이다.

덕산회는 함께하는 산행, 더불어 담소하며 즐기는 산행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은

이런 친구들의 과잉 의욕에 자주 무너진다. 오늘은 3부분으로 나누어졌다.

1진은 먼저 가고 2진에 있다가 3진을 기다리는데 3진에서 하산 이야기기 나와서

먼저 올라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하는 수 없이 그대로 올라가고 말았다.

함께하지 못하고 낙오하였다면 오늘의 산행의 의미는 굉장히 퇴색되었을 것이다.

조금 기다려 주고, 조금 배려하면 함께 할 수 있는 산행을 너무 서두르는 통에 실수를 하였다.

다행히 늦게 출발 하였지만 낙오하지 않고 3인방과 함께 올라와 준 봉일이가 있어서

낙오자 없이 모든 친구들이 함께 할 수 있어서 고마왔다.

매봉령 정상에서 점심을 시작하였고 식사가 끝날 무렵에 뒤쳐진 4명이 도착하였다.

반갑고도 반가왔다.

 

매봉령에서 구룡령봉, 주억봉까지는 무성한 관목 숲이 밀림처럼 이어졌지만 험하지는 않았다.

주억봉 오르는 입구에서는 배낭을 내려놓고 맨몸으로 정상으로 올라갔다.

올라가기만 힘들지 볼 것은 별로 없다는 경험자들의 얘기가 퍼지면서 가방을 지키겠다는

친구들이 몇몇 나타났고 우리는 기꺼이 배낭을 내려놓았다.

주억봉에서 계곡으로 내려오는 하산 속도는 꽤 빨랐다.

내려오는 모습도 여러 방법이다

신속히 대기하고 있는 버스를 목표로 부지런히 내려오는 친구들과

이곳저곳 둘러보면서 여유롭게 내려오는 친구들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2.숙소에서의 만찬

저녁은 옻닭 백숙이 준비되었고 선영이는 따로 준비한 고기를 구워 제공하였다.

소주와 맥주가 물리적으로 합쳐지고 명식이가 특별히 가져온 두 종류의 술이

혀끝의 맛을 자극적으로 건드려 주었다.

바야흐로 주당들의 행복한 시간이 시작되었다.

멍석을 깔고 앉자마자 술잔이 돌기 시작하였고 차가운 밤공기기 점점 덮혀지고 주흥이 도도해지자

마당가 서 있는 자귀나무는 이파리를 포개어 닫아버리고 새색시의 분홍빛 뺨처럼 부드러운 하얀

자귀꽃도 어둠에 묻혀 보이지 않았다.

뒤뜰에 심어놓으면 부부의 금슬이 좋아진다고 옛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자귀나무를

가까이서 보고 밤에는 잎이 포개어진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하고 나니 나도 흥분이 되어

여러 친구들에게 반복적으로 알려 주었다.

큰상을 물린 뒤 차려진 술상 주위엔 친구들이 다시 몰렸다.

젓가락 장단으로 들려오는 흘러간 옛노래는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늦도록 잠 못들게 하였다.

 

3.아침 산책과 해장술

늦게까지 술을 마셨으니 아침밥 먹는 시간을 9시로 예약해 두었다.

일찍 일어나는 친구들는 1시간 정도의 산책을 할 수 있는 둘레길을 다녀왔고

늦게 잠자리에 들었던 친구들은 다시 해장술을 마시면서 늦은 아침밥을 기다렸다.

공기가 맑은 산속에서 하룻밤을 자고 나니

비록 잠 잔 시간이 짧아도 머리는 개운하고 마음은 상쾌하였다.

준비에 실패하면 실패를 준비한다는 이야기처럼 선영이의 꼼꼼한 준비와 깐깐한 운영으로

정선이도 몹시 바쁘다. 충분히 생각하고 준비하여도 예기치 않은 돌발 상황으로 일을

망치게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확인도 여러 번 하게 된다.

푹 쉬었고 아침까지 잘 먹었으니 38선 휴게소 인근의 해수욕장으로 출발하였다

 

4.해수욕장 모래밭

날이 흐리다. 비라도 한바탕 내릴 것처럼 회색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다.

야심차게 준비한 이벤트를 날씨가 받쳐주지 않는다.

해수욕장에 도착하여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해변으로 나가니 썰렁하다.

해수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파도타기 서핑하는 사람들만 높은 파도를 즐기고 있었다.

감히 바다로 뛰어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밀려오는 파도 끝을 밟아 보거나 모래를 만지거나 수박을 먹으며 낮술을 마실 뿐이다.

이것저것 챙기던 선영이가 우람한 근육질 체격을 앞세워 바다 속으로 먼저 뛰어 들었다.

들어오라고 아무리 손짓하여도 구경만 할 뿐이다. 눈팅만.

 

일본에서 일본 원숭이들의 행동 습관을 관찰한 기록을 읽은 적이 있다.

흙이 묻은 고무마를 물가에 뿌려 놓았으나 아무 원숭이도 그것이 맛있는 고구마인 줄

모르고 먹으려 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난 뒤 한 마리가 고구마를 들고 물로 씻어서

먹어 보았다. 다른 원숭이들은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그 원숭이가 먹는 것은 빼앗아 보려고 하면서도 직접 씻어 먹지 않았다.

두 번째 원숭이가 고구마를 첫 번째 원숭이처럼 씻어 먹었다.그래도 잠잠.

세 번째 원숭이가 씻어 먹자 모두들 우루루 달려들어 고구마를 씻어 먹으며 순신간에 모두

먹어 치웠다.

 

두 번째로 규진이가 웃통 벗고 물로 뛰어 들었다. 모두들 구경만 한다.

세 번째로 드디어 성식이가 뛰어 들었다. 모두 근육질 체격들이다.

우루루 몰려 들어와야 하는데 잠잠하다. 우리는 원숭이가 아니었다.

그 뒤로 나를 포함하여 세명이 더 물 속으로 걸어 들어 갔지만 더 이상 웃옷을 벗는 친구는 없었다.

그러나 횟집에서의 오찬은 거센 파도 소리보다 훨씬 드높고 호응도가 높았다.

한숨 대신 함성으로, 걱정대신 열정으로, 포기 대신 죽기 살기로 지상의 모든 술을 박살내기

위하여 용감하게 먹고 마시고 또 마셨다.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친구의 목소리도 들린다.

 

5.돌아오는 차 속

한계령을 넘어 왔다. 고산준령들이 비구름을 물고 서 있는 모습은 언제 봐도 경이롭다.

한계령 휴게소에서 한참동안 풍경을 감상하며 탄성을 지어냈다.

선영이 특유의 섭외 능력으로 식당에서 챙겨온 술안주와 소주와 맥주가 준비된

25인승 버스는 움직이는 까페가 되고, 노래하는 주점이 되고,

주장을 내세우는 아고라의 장으로 되어갔다.

간밤에 젓가락 장단의 노래 소리로 잠을 설쳤을 지도 모를 기사 분은 우리들의 기호를

금방 파악하고 트롯트 메들리를 틀어 주었다. 불콰해진 우리들은 입을 모아 화답하며

목을 혹사 시켰다.

술잔이 돌아가며 행복한 시간이 죽 이어지다가 급기야 노숙자의 죽음이 스쳐가고 문학이 죽고

술은 살아나고 노래소리는 다시 높아졌다 낮아졌다 반복하였다.

서울이 가까워졌다는 안내를 듣자 친구들은 다시 분주해 졌다.

잃어버린 썬글라스을 다시 찾았고, 물에 잠긴 휴대폰을 새삼 챙기고

부러진 안경 다리를 찾다가 아려오는 가슴으로 친구에게 고언하는 모습에서는 박수가 터졌다.

도시의 불빛이 차창으로 스며들자 우리들는 급격히 작아졌다.

 

6.청진동 해장국집

종로 1가의 청진동 해장국집에서 1박 2일의 방점을 찍었다.

해장국과 수육이 나오자 마지막으로 5차의 술들이 조신하게 대령 하였다.

군자동을 논스톱으로 통과하며 명식이가 총을 꺼내 들었다.

청진동에서 명식이의 총을 맞지 않고는 아무도 귀가 할 수 없다.

위하여/위하여/위.하.여, 대신

나지막하게 위하여!를 외치고 끝을 맺었다.

 

*점심 먹고 봉일이는 가족을 기다리며 식당에 남았고

청진동에 도착한 후 일산의 태진이와 규진이는 명식이의 총을 피해간다.

 

-정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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