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회, 한 해 산행을 마치며.
찬바람 이는 겨울 저녁, 어둑한 우면산 산자락에 모여
잠시나마 시간의 틀에서 벗어나 함께 깃들었던 지난 산행을 돌아봅니다.
언제 찾아도 반겨주는 도봉을 필두로 선자령, 북한산, 관악산, 청계산, 검봉산을
돌아 방태산, 수락산, 마니산, 호명산 거쳐 불암산에서 발길을 멈추었습니다.
무더운 여름날이나 혹한의 겨울 날씨 속에서의 힘들었던 산행도 돌아보면
아늑한 추억의 한 영상으로 남아 있기도 합니다.
우린 산을 오르내리고 있었지만,
조금씩 줄어드는 건강을 유지하려고 애섰는지도 모릅니다.
때론 햇살이 바위를 온돌처럼 데워주었고 바람은 탄산음료처럼 땀을 식혀 주었습니다.
작은 창문 같은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산 아래의 풍경에 감탄하기도 하였습니다.
걷는 것만으로도 기쁠 수 있다면 참기 인원이 아무리 적더라도
기꺼이 걷는 일에 몰두하였고 또 걷는 동안 우리는 행복하였습니다.
지도에도 없는 길을 가다 당황하기도 하였지만
마침내 이정표를 발견하여 안도하며 고마워하기도 하였습니다.
깊은 밤 어느 산속에서 젓가락 장단으로 밤늦도록 노래도 불렀고,
하얀 눈동자가 붉게 변할 때까지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
외치면서 술잔을 비운 날도 참 많았습니다.
보람 있는 산행과 즐거운 뒤풀이를 위하여 몇몇은
우리가 마신 술병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을 지급하면서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심초사하였고 성실히 준비하였습니다.
덕분에 안전 산행의 전통도 쭉 이어 갈 수가 있었습니다.
특히 때맞춰 총을 뽑아 엄호사격을 해주는 김명식을 비롯한 후견인들이 나타나
어려운 산행을 마친 뒤에도 궁색하지 않게 드높은 총소리를 즐기기도 하였습니다.
일찌감치 산길을 떠나 도시의 불빛에 숨어 버린 친구들이나
함께 산을 올랐지만 자주 산에서 볼 수 없는 친구들이 그립고
머리칼이 가늘어지고 근육이 줄어드는 요즈음,
덕산회의 체격도 조금씩 왜소해지는 기분이 들어
10년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언젠가 다시 산행을 재개할 계획이라면
남은 우리의 삶 중 가장 젊은 지금, 건강에 이상 신호가 오기 전에,
산은 눈부시지만 걸을 수 없다고 후회하기 전에,
지금 결심하면 좋겠습니다.
제 몸을 도끼로 찍어도
향기를 묻혀주는 향나무 같은 일꾼들이 있을 때 말입니다.
내년 한 해도 그동안의 산행을 발판으로
더욱 알찬 산행이 되도록 함께 나아갑시다.
올 한 해 참 즐거웠습니다.
-산행대장 정동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