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市 능선)

길을 걷다보면.

능선 정동윤 2013. 2. 23. 21:41

 

유병욱의 장녀 선주양의 결혼식을 마치고 걸어서 양화대교를 건너다가 선유도로 내려갔다.

겨울 섬에는 인적이 드물었으나 보기 드문 가죽나무를 보았고 멀리서도 금방 눈에 띄는

하얀 자작나무 작은 숲도 보았다. 선유도를 반쯤 돌다가 몇 사람의 젊은이가 보였다.

 

 

예비 신혼 부부가 촬영기사를 대동하고 배경이 좋은 곳을 찾아서 웨딩 화보를 위한

사진을 찍고 있었다. 호기심으로 잠시 바라보다가 떠나려고 하니 기사가 사진의 배경으로

지나가는 사람 역할을 부탁하였다. 젊은이는 언덕 아래서 마주보는 모습을 연출하고.

흔쾌히 NO 하였다. 조건을 달았다.

내 역할을 마치고 내가 짧은 시를 축시로 들려 줄 테니

그동안 입맞춤을 할 수 있느냐고 물어 보았다.

두 사람은 흔쾌히 OK 하였다.

지나가는 사람의 역할을 마치고 나는 나지막한 언덕에서 앉은 자세로 두 사람을 내려다보며

평소 애송하는 류시화 시인의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라는 시를

천천히 암송 해 주였다.

두 젊은이는 처음엔 입만 대고 있다가 내 목소리의 톤이 조금씩 높아지자 두 사람의 반응도

점점 격렬해 지기 시작하였다. 30 센티미터 눈 앞에서 펼쳐지는 젊은이의 입맞춤은

끝 구절인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까지 다 암송하여도 입맞춤이 멈추지 않았다

.

손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개그 콘서트 모드)”라고 말을 하자

두 사람은 눈을 뜨고 떨어졌다.

사진 기사는 좋은 작품이 나왔다고 흥분해서 연신 셔터를 눌렀고

두 사람은 부끄러워하며 고맙습니다” 를 몇 번이나 반복하고는 멀리 달아났다.

후후후 좋은 시절이다.

내가 좋은 일 했는지 젊은이들이 좋은 일 했는지 모르겠다.

 

 

나는 양화대교를 건너 다시 강변으로 내려가서 서강대교, 마포대교,

원효대교, 한강철교, 한강대교까지 걷다가

한강대교 북단으로 올라가서 서울역 방면의 버스를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