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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나들이

능선 정동윤 2013. 9. 11. 10:07

 

화려한 단풍도 들기 전에 떨어지는 나뭇잎은 무슨 사연이 있을까?

아직도 녹색이 진하고 벌레 먹은 데도 없는데 일찍 떨어져

도로의 가장자리에서 아직도 생명이 남아 있는 듯 팔랑거리는데....

폭염과 함께 악을 쓰며 존재를 알리던 매미도 소리 없이 물러나고

귀뚜라미를 비롯한 풀벌레 소리의 작은 파동이 귀속까지 한꺼번에 몰려온다.

 

여름이 다 가기 전에, 가을이 더 깊숙이 들어오기 전에 용산역으로 향했다

불과 2주 전에만 하여도 휴가 인파로 떠들썩하던 젊은 기차역 대합실이

어느새 조락하는 나뭇잎처럼 중년의 인파들이 대합실 의자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번 여행은 시집 간 딸이 모처럼 친정 나들이를 해서 간단한 기차여행을 준비했는데

천리포 수목권과 만리포 해변, 보성의 녹차밭과 담양의 죽녹원을 보여주기로 하고

2주에 걸쳐 아내와 딸과 함께 주말을 이용하여 다녀왔다.

친구들과 함께 떠난 청산도 여행과 아내와 같이 무시로 떠나는 나들이도

딸과 함께 떠나는 가족 여행도 모두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오늘은 보성의 녹차밭은 거쳐서 담양의 죽녹원까지 다녀올 작정이다

도중에 인적 끊어진 해수욕장도 걸어보고 메타세콰이어 가로수 길도

찾아 가 볼 작정이다. 이렇게 해서 금년의 남도 여행은 대충 마무리하면

어느 지역이 또 나의 관심 속으로 찾아올 지 모를 일이다.

아참, 9월 말쯤 남해 충무의 사량도 등산을 남도 여행의 마침표가 될 것 같다.

 

KTX를 타고 가면서 차창으로 흘러가는 풍경 속으로 빠져들면

영화 설국열차의 장면들이 떠오른다.

지구 온난화로 북국의 얼음이 녹아 북쪽의 차가운 기온을 막을 수 없어

지구는 빙하기에 접어들고 모든 생명은 살아남지 못한다.

인류의 마지막 남은 사람들을 태우고 긴 설국열차는 지구를 순회한다.

열차 내에서 자급자족을 하며 생존을 위해 엄격한 질서를 유지하는데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차별 대우로 계급적 갈등이 생긴다.

그 설국열차의 이야기보다 열차 밖에서 펼쳐지는 빙하기의 풍경과

지금의 기차여행으로 바라보는 나지막한 산과 짙은 풀빛 들판의 모습이

겹쳐진다. 이토록 평화로운 여행을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안도감.

 

지난 8월17일에 천리포 수목원에 들러 호랑가시나무와 목련을 둘러보고

남도 지방에서만 볼 수 있는 감탕나무과 수목인 아왜나무, 광나무, 꽝꽝나무

호랑가시나무를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꾹꾹 눈도장을 세게 찍었다.

특히 호랑가시나무의 붉은 열매는 예수님이 쓰신 가시관의 가시를 뽑으려고

몸에 피가 나도록 부리질을 한 로빈이라는 새가 즐겨 먹었다고 서양에서는

크리스마스 선물 포장에 이 나무의 잎과 열매를 꼭 끼워 넣는다는 풍습이

있다고 들었다..

잎은 가죽질로 두껍고 가장자리에 가시가 있어서 호랑이가 이 가시에 등을

긁었다고 호랑가시나무라 전해지는데 서울에서는 홍릉 수목원과 어린이 대공원

식물원에서 본 적이 있다.

 

올해는 강화도를 시작으로 서해안의 여러 섬과 태안의 많은 해변 길을 걷기도 하고

전라남도의 여러 곳을 다녀보면서 너무 심각하지도 너무 가볍지 않기로 노력했다.

주어진 자연 환경에 적응하며 한 줌의 햇살을 고마워하고 한 줄기 바람으로도

파안대소 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며 별다른 설계도 없이 그저 살아온 지나온 세월을

반성하고, 남은 세월은 꽤 성실하게 설계도를 준비하여 다시 한 번 자알 지내보려는

다짐도 수시로 하였다.

 

길 위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길 위에서

철학과 문학, 그림과 음악을 품고있는 길 위에서

숨이 다 할 때까지 걷고 싶다.

 

다시 남해 사량도를 생각하며...

 

-정동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