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市 능선)
멀리 돌아 왔구나
능선 정동윤
2013. 10. 21. 11:01
멀리 돌아 왔구나/정동윤
그 시절 우린 부족한 게 많았지
옷이라곤 교복과 교련복이 전부지만
교모로 멋을 부릴 줄 알았고
동대문 일대를 휘저으며 투박한 우정을 쌓아갔고
교통비 아껴 영화 보느라
몇 시간 걸어 집으로 가기도 하였지만
눈빛 하나만은 늘 반짝거렸지//
짧은 3년 훌쩍 보내고
씨알이 조금씩 굵어지더니
우린 대양으로 뿔뿔이 흩어져
먼 바다를 유영하고 다녔지만
모교에 대한 향수는 연어의
귀소본능처럼 교가를 부르며 앓기도 했었지//
저마다 울타리를 일구어 가며
비슷한 시기에 가정을 꾸렸고 아이도 낳고
일터와 사회에서도
점차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도 하면서
느티나무처럼 그늘을 넓히고
정자나무로 뿌리 굵어지느라
까까머리엔 어느새 하얀 서리가 내렸구나//
교실 중간쯤 껄렁한 웃음 날리던
코밑 시커먼 친구가,
공부보다 이성에 관심이 많았던
덩치 큰 친구가,
앞줄에서 눈에 띄지 않다가
나중에 훌쩍 커버린 친구가,
그렇게 넓었던 운동장 구석구석에 박혀
자유롭게 뛰놀던 아련한 친구 모습이
그때의 느낌과 또 다른 모습으로
낯선 교정으로 찾아 왔구나//
오늘, 다시 열일곱 시절의 눈높이로
친구를 바라보며
남은 세월 함께 걸어 갈 우리,
밀린 회포 운동장에서 풀어보자
책임과 의무는 잠시 미루어두고
늦었지만 운동장 한 바퀴 뛰어보자
불함산 문화의 샘이 마르지 않고
우리를 키웠구나
집안 대소사가 아니라도
자주 만나자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