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선 정동윤 2013. 12. 29. 18:12

그날 이후/산능선

 

죽음의 고통도 처연한 미소로 연출 된 돼지머리의
선명한 콧구멍에 푸른 연기 생으로
퍼 올리는 담배 한 대 물리고
낄낄 웃은 불경 탓이었을까.

 

도착하지 않은 산꾼들 기다리기 지루해
제수용 탁배기 한 잔 들이켰고
그래도 시간이 남아 몇 순배 더 돌리며
엄숙을 빼 버린 탓이었을까.


아침부터 따라 다니던 긴 그림자가
파전만하게 등산화 주위로 오그라들 때쯤
산을 향해 촛불과 향 피워 올리고
초헌관 재배가 조심스럽게 이루어졌다.


성벽보다 견고한 바위벽에 매달릴 자일
상수리나무에 걸어 놓고
한지에 물 마르듯 태양이 산 그림자 다 핥아먹은
정오가 지나서 축문이 태워졌다.


시산제 뒷풀이로 산 아래 주막에서
기고만장 술에 취한 제주 이층 계단에서 굴렀다.
눈 한 번 감는 사이에 이층과 일층이 뒤바뀌었고
어깨는 바닥에 발은 허공으로 향해졌다


그 날 이후 북한산에 떨어진 물방울
바다까지 가지 못하고
가뭄에 증발될까 한강변 모래로 스며들까
걱정이 태산이었다


천 번의 구비 돌고 돌아
끝내 서해 바다에 도착하는 꿈 깨어질까바
아픈 어깨 주무른다.
습관적으로 자꾸자꾸 주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