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선 정동윤 2014. 2. 8. 22:11

 

입춘이 지나고 내리는 눈이 수상하였다

강원도에서는 치우고 치워도 처마까지 쌓이고

서울에서는 내리고 내려도 빗물처럼 흘러내렸다.

눈은 따뜻하고 포근하고 아늑하기도 하였다.

 

입춘이 지나고 오르는 산, 젖어가는 북한산이 반가웠다

산길은 내리면서 녹은 눈이 솔잎과 마른 흙이 뒤섞여

밀가루 쑥버무리처럼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눈이 녹아 차가워진 승가사 계곡 물엔

버들잎만한 버들치가 조그만 온기라도 찾아내듯

반짝이는 돌 틈 사이로 맹렬하게 파고들었다.

물소리는 어린 산비둘기 날개 짓보다 연하게 들렸다.

 

은은히 젖어가는 산에도 머지않아 생강나무 노란 꽃이

폭죽처럼 터져 나오면 어쩌면 우린 이 겨울을 까맣게 잊어버릴 지도 모른다.

입춘이 지나고 내리는 눈은 내리면서 흩어지고 흩어지며 녹아버린다.

 

아직 멀리 있는 봄의 햇살이 금방이라도 새싹처럼 뚫고 올라올 것 같다.

어두운 땅 속에서 검은 뿌리를 잡고 있는 봄이

손등이 터지도록 뿌리를 흔드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우린 눈 내리는 산에서 겨울 옷을 또 한 겹 벗어 배낭에 담았다.

 

아내는 양손의 스틱처럼 눈 앞에 보이기도 뒤에서 따라오기도 하였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도 시동이 꺼졌다 다시 걸리는 익숙한 모습으로

변함없는 북아등 엔진에 잘 달궈지고 있었다.

 

입춘이 지나고 올랐던 산을 떠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풍경은 시나브로 무채색으로 단순해지는데

변화무쌍한 날씨를 의심하며 떠나는 산이 아쉬어

다시 인왕산을 생각해 보기도 하였다.

 

산아래 해장국 집은 인심이 넉넉하였고

친구가 풀어놓은 청어과메기는 뒤풀이 맛을 한층 돋워주었다.

 

북아등 647회 잘 다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