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읽기

[분노의 포도]

능선 정동윤 2014. 2. 17. 21:24

[고전 소개]

미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존 스타인벡의 작품『분노의 포도』. 대공황 시대 미국의 참혹한 현실을 그린 이 작품으로 존 스타인벡은 퓰리처 상과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며 미국의 대표 작가로 거듭나게 되었다. 정직하게 살아가다 하루 아침에 비참한 이주 노동자로 몰락한 조드 일가를 통해 당시 미국의 현실을 생생하게 포착하였다.
분노의 포도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산업자본주의가 대두되던 시기의 미국 농촌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가난에 절망하면서도 끝까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 애쓰는 조드 가족의 이야기는 희망의 가능성이 여전히 인간에게 있음을 보여준다. 약속의 땅을 향한 고통스러운 여정을 통해 절망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인간의 생명력과 희망을 그린 작품이다.



[저자] 존 스타인벡 (1902~1968)

1902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 살리나스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스탠포드 대학을 다녔으나 졸업은 하지 않은 채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1935년 발표한 『토르티야 평원』으로 처음으로 대중적인 반응을 얻었다. 그러나 그는 만족하지 않고 좀 더 진지하고 위협적인 주제를 선택했고 『승산 없는 싸움』(1936)과 『생쥐와 인간에 대하여』(1937, 퓰리처 상 수상)에 이어 마침내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분노의 포도』(1939)를 발표했다. 모래 바람으로 농사를 망치고 트랙터에 밀려 고향을 등진 오클라호마의 농부 일가를 주인공으로 한 이 작품에서 스타인벡은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말이 무색하도록 참혹한 미국의 현실을 그려 냈다. 『분노의 포도』는 출간되자마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으며, 이듬해인 1940년 스타인벡은 퓰리처 상을 수상했다. 또한 그가 노벨 문학상을 받았을 때, 스웨덴 한림원은 “『분노의 포도』는 위대한 작품이며, 스타인벡이 노벨 문학상을 받은 가장 주된 이유이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1952년에는 고향인 살리나스 계곡과 자기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반영한 기념비적인 작품 『에덴의 동쪽』을 발표했다. 이 작품은 엘리아 카잔 감족, 제임스 딘 주연으로 영화화된 바 있다. 이후 스타인벡은 영화, 연극 등의 분야로 활동 범위를 넓혀 갔고, 1962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1968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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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포도] 미국 대공황시기 소작농들의 삶의 애환과 분노의 숭고한 승화, 사랑의 생명력
미국 캘리포니아주 샐리너스에서 태어났다. 196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이른바 로스트 제너레이션을 이은 30년대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대표하는 작가로서, 그의 작풍은 사회의식이 강렬한 작품과 온화한 휴머니즘이 넘치는 작품으로 대별된다. 군청의 출납관리였던 독일계 아버지와 초등학교 교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가정이 어려워 고등학교 시절부터 농장 일을 거드는 등 고학으로 스탠퍼드 대학교 생물학과에 진학하였다.

그러나 1925년 학자금 부족으로 중퇴, 문필생활에 투신하기로 결심하였다. 뉴욕으로 와서 신문기자가 되었으나, 객관적인 사실보도가 아닌 주관적 기사만 썼기 때문에 해고되어, 갖가지 막노동으로 생계를 이었다.

육체노동으로 각지를 전전하다가 캘리포니아로 돌아와 별장지기를 하면서 처녀작 《황금의 잔》(1929)을 발표하였다. 이것은 영국 해적 헨리 모건을 주인공으로 한 낭만적인 이야기였으나 반향이 없었다. 1930년에 결혼, 가난과 싸우면서 캘리포니아 농민의 이상한 생활을 주제로 한 단편집 《하늘의 목장》(1932)을 발표하였다. 이어서 한 농민의 토지에 대한 신비적인 집착을 다룬 《알려지지 않은 신에게》(1933)를 발표하였으나 역시 주목을 끌지 못하고, 1935년의 《토르티야 대지》로 겨우 작가로서의 이름을 얻었다. 이것은 캘리포니아 해안 연변의 마을 몬트리에 사는 파이사노의 생활을 따뜻한 유머와 페이소스를 담아 그린 작품이다.
이듬해 과수원의 파업을 사실적으로 그린 《승부 없는 싸움 In Dubious Battle》(1936)을 쓰고, 이어서 《생쥐와 인간 Of Mice and Men》(1937)의 발표로 그의 명성은 확고한 것이 되었다. 이 작풍은 두 노동자의 우정을 그린 것으로, 베스트셀러가 되고, 자신이 희곡화하여 영화로도 제작되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 희곡 비평가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분노의 포도] 미국 대공황시기 소작농들의 삶의 애환과 분노의 숭고한 승화, 사랑의 생명력

분노의 포도 는 미국의 세계경제 대공황 시절 소규모 농장들이 상업 자본에 의해서 파산하고 통합하여 거대한 농장주의 탄생과 소작농을 변한 소규모농가 농민들과  트렉터 등의 농기계등장으로  농작물도 상업적으로 산업이 되어 대량생산되어

농산물을 버리는 와중에서도 굶주리는 많은 사람들과 아이들 그리고 66번 국도를 통하여 캘리포니아로 떠나가는 여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들과 희노애락  스토리의 중심가치는 에머슨의 초월주의적 사상과 비목적론적 사상 그리고 실용주의 정신이다.

이중에서도 가장 핵심이 되는것은 초월주의적 사상이다. 바로 이것이 자연의 생태론적 유대와 일맥상통하는것이다.
초월주의적사상은 거대한 영혼(over soul)사상이다. 살아있는 모든 자연과 인간을 하나로 통합하는것이며 개인의 정신은 모두 그것의 조각이다.

즉, 사람들 개개인과 자연은 서로 떨어져있는 존재가 아닌 하나로 묶여있다는 의미이다.

소설 초반부에 자연과의 생태론적인 관계가 깨지면서 고난이 시작이되고, 고향을 떠나 66번국도에서의 여정을 통해 자연과 타인들과의 조화로운 만남 속에서 살아있는 인간으로 남아있기를 바라게 된다. 이과정에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되어 과거에 묻히는 자가 생기는 반면, 이를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적응해가는 자가 생겨났다.

노인들의 죽음과 아이의 죽음 그속에서도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다시 시작하는 사람들...
이것은 바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전 인류가 공통으로 겪은 고난과 실패의 역사속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살아남은 인류의 이야기인것이다.


지금은  과거 2차대전 이전의 유럽및 미국을 휩쓴 경제대공황처럼  유럽과 미국 일본및 동아시아 까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어 그당시와 비슷한 면도 있다  이시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그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보고 돌이켜 보면서 반성하고 또 미래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생각들과 정신을 가다듬는데 참고가 되어야 할것이다
 
[분노의 포도] 미국 대공황시기 소작농들의 삶의 애환과 분노의 숭고한 승화, 사랑의 생명력

존 스타인백의 <분노의 포도>를 현대의 우리가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는, 그 당시의 사회 문제점들과 지금의 문제점들 사이에 많은 유사성이 있기 때문이고, 소설에서 나타난 작가의 문제 해결에서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삶의 여러 현상에 대해서 그 원인이 왜 그러한가를 따지려하지 않고, 살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자세를 견지 하려 하고,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지는 생태론자로서의 세계관과 인간관을 가졋던 작가이기 때문이다.
자연과 사회라는 관계의 울타리에서, 사람과 사람이 서로 이해하게 만드는 일은 자연의 생태론적 유대속에서 인간에 대한 긍적적인 비전을 찾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분노의 포도] 미국 대공황시기 소작농들의 삶의 애환과 분노의 숭고한 승화, 사랑의 생명력
1939년에 출판된 존 스타인백의 <분노의 포도>가 현대에 지니고 있는 가치는 이 소설에서 나타난 그 당시의 사회 문제점들과 현대사회의 문제점들 사이에 많은 유사점이 있고, 소설에서 제시된 작가의 분석과 해결책을 바탕으로 현대의 문제점 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점에 있다.

모든 사물을 상품화시켜 최대의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자본주의는 모든 것들을 서로 단절시키는 개별화가 불가피하게 발생되는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이 소설에서는 이 개별화로 인해 초래된 당시의 인간 소외 현상을 소작농인 민초들의 삶을 통하여 제시하면서 자연으로 부터의 인간 소외와 심지어 자기자신으로 부터도 소외되는 황폐한 상황에 빠진 삶의 터전을 잃은 인간들이 이를 극복해 나가는 방법으로 초월(초절)주의, 비목적론 사상과 실용주의 사상을 제시하였다.

살아있는 모든 자연과 인간을 하나로 통합하는 '거대한 영혼' 사상은 우리 개개인이 갖고있는 영혼은 개별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자연과 생태론적으로 통합된 것이어야만 의미가 있다는 것을 현대의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자연마저도 상품화시킨 자본주의가 초래한 자연(생태) 파괴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이 초월주의 사상이 꼭 필요한 것으로 생각된다.  
 
[분노의 포도] 미국 대공황시기 소작농들의 삶의 애환과 분노의 숭고한 승화, 사랑의 생명력
분노의 숭고한 승화로 인간존재의 자존감을 세우다!!
 
 
[분노의 포도] 미국 대공황시기 소작농들의 삶의 애환과 분노의 숭고한 승화, 사랑의 생명력
포도같은 터질듯한 분노, 풍요가 오히려 빈곤을 불러오다!
 
 
[분노의 포도] 미국 대공황시기 소작농들의 삶의 애환과 분노의 숭고한 승화, 사랑의 생명력
작가의 임무는 삶에서 입증된 인간의 능력을 널리 선포하고 찬양하는 것이다
 
[분노의 포도] 미국 대공황시기 소작농들의 삶의 애환과 분노의 숭고한 승화, 사랑의 생명력
오클라호마주 일대에 심한 가뭄이 닥쳐오고 황사가 대기를 뒤덮는다. 경작지가 황폐화된다. 땅에서 작물을 수확하기 어렵게 된 농민들은 은행 융자금을 상환하지 못해 땅을 빼앗기게 된다. 은행은 그들에게 이윤을 먹고사는 괴물로 비춰진다. 이에 농민들은 생활 터전을 잃고 지주와 은행의 빚 독촉에 시달리다가 결국 풍요롭다는 캘리포니아로 이주하기로 결심한다. 거기 가서 과일 따기 일을 하면 높은 임금을 준다는 광고문들은 그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잿빛 황무지'를 떠난 가난한 오키들의 행렬은 '푸른 신천지'를 향해 고난의 여정을 계속한다. 그것은 새로운 가능성을 꿈꾸는 긴 여정이었다. "백만 에이커를 가진 한 사람의 대지주를 위하여 10만 명이 굶주리고 있는" 황무지 같은 현실에서 아직은 좌절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다. 노동자를 대량으로 모집한다는 황색 광고문은 그들에게 말 그대로 희망의 지표였다. 열심히 일하면 작은 흰집을 짓고 밭을 갈아 포도를 맛있게 실컷 먹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 말이다.
그러나 캘리포니아도 그들에겐 푸른 신천지가 아니었다. 가난한 이주민들에게 제공할 복락의 땅은 한 뼘도 없었다. 그들은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려웠고, 그러기에 당연히 생존 그 자체가 위태로운 형국이었다.
캘리포니아 주의 곳곳에는 길목마다 사람들로 들끓었다. 끌고 밀고 들고 일하고 싶어서 미쳐 있는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몰려오고 있었다. 한 사람의 손이 들어야 하는 짐 하나마다에 다섯 사람이 손이 뻗어 왔고, 한 사람의 배에 찰 만한 음식에 다섯 사람의 손이 뻗어 왔고, 한 사람의 배에 찰 만한 음식에 다섯 사람의 입이 벌려졌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굶주린 나머지 영양실조로 많은 이들이 죽어갔다. 그럼에도 대지주들은 가격 폭락을 우려하여 오렌지 더미에 석유를 뿌려 썩게 하고, 돼지를 죽여 생석회를 뿌려 못 먹게 만든다. 그 어떤 대지주도 가난한 오키들에게 오렌지와 포도와 돼지고기를 적선하지 않았다. 지옥을 방불케 하는 공간이었다. 그러니 그들이 품었던 희망도 한낱 사막의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 것일 수밖에. 희망이 자리했던 그들 영혼의 공간에는 대신 분노의 포도만이 가득히 영글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