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읽기

[양철북] '오스카'의 몸에 갇힌 지성의 북소리

능선 정동윤 2014. 2. 18. 07:52

 

[고전 소개]

나치스 치하에서 성장하여 전쟁에서 살아남은 독일 전후세대를 대변하는 탁월한 작품이다. 단치히를 무대로 독일전쟁 이전 바이마르시대와 나치스시대, 그리고 2차대전의 격동기를 거쳐 전후시대를 오스카라는 난쟁이의 삶을 통해 그려낸다. 이 소설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슐뢴도르프 감독 영화로 만들어져 칸국제영화제 그랑프리 미국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저자] 귄터 그라스 (1927~ )

귄터 그라스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널리 알린 작품은 첫 소설「양철북」(1959)으로 전후 독일문단에서 큰 주목을 받아 1965년 뷔히너상을 수상하였다. 그라스는 그 뒤에도 「개들의 시절」(1963), 「넙치」(1977), 「무당개구리 울음」(1992), 「광야」(1995) 등의 장편을 발표했는데, 그의 작품은 아이러니와 위트가 넘치며 직설적인 현실폭로로써 속세와 시대를 비평하는 것이 특징이다.




[양철북] '오스카'의 몸에 갇힌 지성의 북소리
2차 대전시 독일군 병사의 배낭에 가장 많이 들어 있던 책이 데미안 이라고 함.

 

[양철북] '오스카'의 몸에 갇힌 지성의 북소리
"소시민 세계의 악취"와 나치즘의 관계에 대해 설명
-. 나치의 원인:자본주의라는 제도적 문제나 독일민족사라는 독일역사의 특수성에서 찾기보다는 소시민세계에서 그 원인을 찾음
-. 나치즘에 대한 통설:독일의 대중은 순진했지만 나치 괴벨스의 선전 선동에 의해서 다수의 대중들이 나티의 악마에 홀린것인다
-. 소신민들의 나치당 입당: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노동이 가지고 있는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
-. 소시민 세계와 나치즘:소시민들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무의식 이데올로기적 혼돈이 나치를 가능하게 함 소시민 세계의 소외된 노동과 삶의 의미 부재가 정치적 집단적 광기로 표출된 것임

관점
오스카는 문학사적 전통 소시민 시각 나치 레토릭의 페러디를 하고 있음
오스카는 하나의 개념이자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 파괴적인 시대상 유미주의적 태도 소시민들의 일상의 악취들 독일사회의 유아성 및 불구성을 암시하는 시위대상의 알레고리로 표현함
양철북은 그라스의 날카로운 사회비판의식에 기초하여 알레고리로 쓰여졌고 작품속에 내재해 있는 사회적 함의를 밝혀내야 텍스트의 심미적 구조를 이해할 수 있다

 

[양철북] '오스카'의 몸에 갇힌 지성의 북소리

<양철북>에서 보여주고 있는 "소시민 세계의 악취"와 나치즘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고, 이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해 보세요.

단치히의 소시민을 우선 소개합니다.

마체라트(식료품 상인)는 노동의 소외, 노동을 통해서 어떤 의미도 발견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나치당에 입당한다.
그레프(채소 상인)는 자신의 동성애를 감추기 위해 나치당에 입당한다.
셰플러 부부(빵집경영)는 일상적인 삶 속에서 성적불만을 정치적 형태, 왜곡된 방식으로 표출된 것이 나치당의 입당으로 나타난다.
마인(트럼펫 연주자)은 극좌에서 극우로 넘어가 나치당에 입당한다.
마리아는 전쟁전에 소시민들이 보였던 역사, 정치의식의 부재상황이 기회주의적 방식으로 재현한다.

이와 같이 소시만들이 가지고 있는 부조리나 정치적 무의식이 나치를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소설속에서 이점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 개미도로입니다.
'개미들이 역사를 만든다'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소시민은 역사적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나든 오로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욕망만을 바라봄으로써 정치나 역사의 세계에 무관심했던 독일 소시민들과 엄청난 에데올로기적 혼돈 속에서도 시대를 역행했던 소시민 계층에 의해 나치가 가능하게 된것입니다.

깨어있는 시민들에 의해서 민주주의는 진보합니다. 그리고 그라스의 소신처럼 침묵은 죄입니다. 항상 세상과 역사와 사회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양철북] '오스카'의 몸에 갇힌 지성의 북소리
작가가 살아온 환경이 작품에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볼수가 있었다.

 

[양철북] '오스카'의 몸에 갇힌 지성의 북소리

독일 나치즘의 원인을 보면  소시민세계의 정치적 무의식과 이데올로기의 혼돈으로 보고있다. 개개인의 필요에 의해 나치당에 입당하므로로써 커다란 나치즘의 형태로 나타난다. 소시민들이 각자의 욕구충족과 이익을 쫒거나 혹은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의 탈출구로서 나치당에 입당한것이 결국 독일 전후 사회를 커다란 혼란으로 이끌고 간다. 나치즘을 자본주의 사회의 결합이나 독일역사의 불균형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어찌보면 소시민의 책임으로 보는 견해 또한 바람직한 태도라 생각한다. 현실사회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인식은 건전한 사회를 이루어 가는데 매우 중용한 역할을 하며 자신의 지적영역에 머물지않고 공동의 이익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양철북] '오스카'의 몸에 갇힌 지성의 북소리

양철북을 영화를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 이면에 이렇게 큰내용이 있는줄 오늘 처음 알았다.

 

[양철북] '오스카'의 몸에 갇힌 지성의 북소리

     귄터 그라스가 문제의 나치 무장친위대로 활동한 것은 17세경, 그러니까 미성년시절의 일이지만, 그것이 충분한 변명이 되지 않을 정도로 나치와 관련된 과거에 대해서 유럽사회는 냉엄하다. 구체적인 범죄행위의 혐의가 한번 주어지면 반세기가 훨씬 넘는 오늘날까지도 집요하게 추적되곤 한다. 그러나 귄터 그라스의 경우, 현재 사람들이 충격을 받고 배신감을 느끼는 것은, 과거의 행적 그 자체보다 이후 반세기 넘게 견지해온 그의 입장과 태도이다. 실제 그가 전쟁범죄에 구체적으로 가담했다는 증거도 없고, 2차 대전 당시 어쩔 수 없이 군대에 끌려가 나치를 위해 싸운 청년들도 많다. 문제는 그가 전후 줄곧 좌파 평화주의자를 자처하며 반전운동 및 인종차별 반대운동을 해왔고, 나치 전력을 가진 인사나 정치적 견해가 다른 우파 정치인 예술인들을 격렬하게 비판해온 것으로도 유명하기 때문이다.
     “(나치경력을) 고백할 수 있는 마땅한 문학적 형식을 찾지 못했었다”고 본인은 말하지만 별로 납득 안 가는 변명으로 들린다. 그래서 결국 찾아낸 ‘문학적 형식’이 바로 ‘회고록’이라는 말일까. 그의 ‘고백’이 마케팅이라는 조롱어린 비난까지 나오고 있다. “이번 고백이 먼저 있었다면 노벨상수상은 없었을 것”이라는 한 평론가의 비판, “누구보다도 순수하고 도덕적인 것처럼 행동했지만 이번 사건으로 그가 지금까지 한 말들은 모두 우스꽝스럽게 됐다”는 독일전국유대인협회 샤를로테 크노블로흐 회장의 논평은 귄터 그라스에 대한 여론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귄터 그라스는 1927년, 양철북의 무대인 단찌히(지금은 폴란드령) 태생이다. 회고록 『양파까기』에서 그는 단찌히에서의 유년시절, 나치 무장친위대 병사로서 보낸 전쟁의 마지막 몇 주, 그 속에서 간발의 차이로 죽음에서 벗어난 일, 그리고 포로생활과 전쟁 후에 겪었던 혼란 등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책제목에서 보여주는 바, 글쓰기를 통한 자신의 고백행위를 그는 ‘양파까기’에 비유하고 있다. 양파를 깔 때 특유의 자극성 물질로 눈물을 줄줄 흘려야 하듯 고통스러운 일이었음을 말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라스는 “양파의 껍질을 까는 것, 즉 글을 쓰면서 한 껍질 한 껍질, 한 문장 한 문장에 따라서 무언가가 분명해지고 해독할 수 있고 사라졌던 것이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 말을 듣고 있자면, 고백행위의 어려움을 ‘양파까기’에 비유한 것은 의도치 않은 ‘자기희화화’를 초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눈물을 줄줄 흘리며 까도 까도 알맹이 즉 실체는 얻을 수 없는 행위, ‘양파까기’란 그런 것 아닌가.

 

[양철북] '오스카'의 몸에 갇힌 지성의 북소리

현대 세계에 시민의 정치참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점도 이러한 2차대전의 반성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며, 깨어있는 시민정신이 살아있을 때 올바른 정치가 이루어 지고, 사회가 건설된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작가나 지식인의 정치참여가 아닌 현실사회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인식은 건전한 사회를 이루어 가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본다. 자신의 지적영역에 머물지 말고 공동의 이익에 관심을 가쟈야 할 것이다.  

 

[양철북] '오스카'의 몸에 갇힌 지성의 북소리

소시민세계의 악취와 나치즘의 관계

그라스는 독일 나치즘의 원인을 소시민세계의 정치적 무의식과 이데올로기의 혼돈으로 보고있다. 그라스는 "독일의 대중은 순진했지만 나치 괴벨스의 선전선동의 의해 다수의 대중들이 나라의 악마에 홀린것이다."라는 나치즘에 대한 통설에 반대하고 있다.

소시민들의 나치당 입당원인을 보면,마체라트는 노동의소외로 그레트는 자신의 동성애 결함을 감추기 위해,세플러는 일상적인 삶속에서 성적인 불만을 정치적 형태로 해결코자, 마인은 공산당원이었다가 나치 돌격대 트럼펫 연주자가 되는 등 소시민의 원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라스는 노동에서의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상황이 정치적으로 기이한 형태로 표출된것이 바로 나치즘이라고 보았다.

소시민은 역사적으로 어떤변화가 일어나든 오로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욕망만큼 바라본다고 비판하였다.
나치즘을 자본주의사회의 결함이나 독일역사의 불균형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소시민의 책임으로 보는견해 또한 바람직한 태도라 생각한다. 전후 독일에 대한 인식제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그라스의 일관성엔 태도와 노력은 하버마스의 함께 독일정체성의 생산공장이라고 불릴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다.

 

[양철북] '오스카'의 몸에 갇힌 지성의 북소리

귄터 그라스는 나치 정부와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관에 기초했던 하나의 세계가 붕괴되고 부정 당하는 상황을 경험하고 하나의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한 세대 전체가 잘못된 길로 유도됐을 때 얼마나 큰 비극이 초래되었는지를 생생하게 체험했다. 이 후 이를 각성하고 경계하는 심리를 갖게 되고 이는 전 후 독일의 사회적 정체성의 기반이 되었다. '나치'는 귄터 그라스가 평생 대결해야만 하는 시대로 인식하는 독일 역사의 특수성을 나타낸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모차르트의 선율을 이해하고 사랑한 독일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사람들을 끔찍하게 살해했을까? 이는 독일 문화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측면을 보여준다.
'나치즘'은 자본주의가 폭력적인 테러리즘과 결합하면서 '파시즘'으로 전환된 것 즉, '파시즘의 독일적 현상'으로 회자된다. 자본주의 내적 구조에서 원인을 찾는 것이다.  귄터 그라스는 독일 소시민들이 사회경제적으로 상승하고 있던 노동자 계층과 독점적 지위의 부루주아 계층 사이에서 점점 더 계급적 한계에 봉착하면서 자기들이 갖고 있던 자유를 보다 큰 권위에 맡김으로써 이것이 정치적으로 표출되면서 나치즘을 만들어 낸 것으로 보고 있다. 노동에서 소외되고, 노동을 통해서 삶의 의미도 발견하지 못하고, 일상적 삶에서 불만이 표출되고, 정치적 무의식, 이데올로기의 혼돈 등으로 점철된 소시민들의 일상적 삶의 방식(악취)이 결국은 '나치즘'을 낳은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노동은 자신의 내적 잠재력을 실현하는 것이 아닌 자신을 부정한 대가로서 자신의 생존의 최소 조건을 득하는 일종의 노예상태임을 인식한다.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욕망만을 바라보고 정치나 역사의 세계에 대해 무관심했던 독일 소시민들에게 일어났던 비극을 <양철북>을 통해 배우면서 두 번 다시 '나치즘'과 같은 것이 발생하지 않도록 한 시민으로서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민주적 질서를 지키기 위해 인간의 존재, 사회, 역사, 정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참여해야 함을 생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