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읽기

[로마제국 쇠망사] 스러지는 제국의 기록 속에서, 고대와 근대의 유럽을 읽다.

능선 정동윤 2014. 2. 20. 16:39

 

[고전 소개]

로마 제국의 역사를 최초로 개관한 역사서.
역사가이자 작가인 에드워드 기번이 집필준비와 출간까지 20여 년에 걸쳐 완성한 책으로, 1776년에서 1788년까지 12년 동안 모두 여섯 권으로 간행되었다. 서기 2세기부터 콘스탄티노플의 함락으로 동로마제국이 몰락한 15세기까지 1,400여 년의 시간을 생생하게 담았다. 냉정함을 유지하면서 균형잡힌 시각으로 로마제국의 쇠망 과정을 그려냈으며,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에 대한 통찰력 있는 시선을 보여준다. 또한 로마의 쇠퇴와 몰락이라는 주제를 통해 진보의 의미에 대해서도 성찰하고 있다.



[저자] 에드워드 기번 (1737~1794)

1737년 영국 퍼트니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에는 병약하여, 기번은 후일 “어머니와 간호사에 둘러싸인 불쌍한 아이”라고 스스로의 어린 시절을 회고하였다. 건강상의 이유로 자주 중단되긴 했지만 집에서 초등 교육을 받은 후, 15세의 나이로 옥스퍼드 대학 모들린 칼리지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당시 교내에서 벌어지던 종교적 논쟁에 기번이 연루되고, 가톨릭으로 개종하자 아버지가 학교를 그만두게 하여 대학 생활은 짧게 끝나고 만다. 아버지는 그를 스위스 로잔으로 보냈는데, 거기서 5년 동안 고전을 읽고 프랑스어를 배우면서 가톨릭에서 개신교로 다시 개종하였으며,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다. 1758년 영국으로 돌아오고 2년이 지난 1761년에는 최초의 저술인 『문헌 연구에 관한 에세이(Essai sur l''''etude de la litterature)』(영문판은 1764년에 출간)를 출간하였으며, 1762년까지 햄프셔 보병대에서 장교로 복무한 후에 유럽 대륙으로 돌아갔다. 이후 영국과 대륙을 오가며 생활하다가, 1770년 아버지의 사망 이후 영국에 정착하였으며, 1774년에는 하원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의회에서 한 번도 연설하지 않았지만 8년 동안 의원직을 유지했다. 또한 그는 새뮤얼 존슨이 이끈 ‘문학클럽’의 회원이기도 했다. 1763년부터 유럽 대륙 여행을 시작하였는데 결국 『로마 제국 쇠망사』가 되었던 작품을 처음 구상했던 것은 그가 1764년 로마에 있을 때였다. 로마의 폐허를 보고 로마사 집필을 구상하였던 것이다. 『쇠망사』의 제1권이 1776년에 출간되자, 그 내용의 풍부함과 정교함, 박식함, 유려한 문체로 많은 찬사를 받았지만 초기 그리스도교도들을 다루고 있는 부분 때문에 비난을 받기도 했다. 제2권과 3권은 1781년에, 그리고 스위스 로잔에서 집필된 마지막 세 권은 1788년에 출간되었다. 1794년 서섹스에서 사망하여 셰필드 가족 묘지에 묻혔다.

 

[로마제국 쇠망사] 스러지는 제국의 기록 속에서, 고대와 근대의 유럽을 읽다.
-문병과 진보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일까?  먹어야하고 입어야하고 자야한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보태자면 인간은 배워야 한다.

여기서 배움이란 학교에 가서 선생님께 받는 수업을 말하는것이 아니다. 초등교육과 중등교육 그리고 대학교육까지 20년 걸쳐서 충분히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 다음 공부는 자기 스스로 하는 공부다. 찾아서 알아서 적극적으로 필요에 의해서도 하지만 자신을 되돌아보고 비춰보고 자 공부를 한다. 혼자 공부하는 것. 중요하지만 지루하고 장기간 이어지면 맥이 빠지고 자극이 없다. 그래서 모여서 같이 이야기 나누고 문제나 고민이 있을 때는 생각을 공유하고 해결안을 찾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기번이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말한 문명이 바로 이것이라 생각한다. 사회적 인간으로서 "덕" 의 완성이 '정치참여'의 형태가 되고 이것이 곧 공화정이 된다. 인간이 인간답게 사회 속에서 조화를 이루며 살기 위하여, 공동체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기 위하여 모여서 공부를 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같이 모여서 책을 읽고 토론을 하는 것이다.
시대를  넘나들며 공간을 뛰어들면서 함께하는 공부야 말로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고 거기서 얻은 지혜로 공동체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

기번은 게르만족의 쇠퇴를 이렇게 정리했다. 문자는 문명인과 야만인을 구분 짓는 수단이며 게르만족은 야만이었다.
가축과 땅 관리는 노인과 여자, 아이들에게 맡기고 심심해지기 시작한다. 할 일이 없고 무기력하고 재미없어서 전쟁을 한다. 자유는 있지만 이를 지키는 시민의 덕이 없었으며 화폐가 없어서 교환을 통해 형성되는 자연스러운 인적 네트워크가 없는 것이다. 이는 상호 의존해야 하는 사회생활이 존재하지 않음을 뜻한다.

현재 우리에게는 다 있다. 문명도 있고 화폐도 있고 사회생활도 왕성하게 하고 있다. 그런데 왜 진보하지 않는가???
자꾸 부패하고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는 것처럼 후퇴하고 있는가??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함이 없이 혼자의 생각되로 일을 처리하게 해서다. 그 시간에 더 많이 벌고 더 많은 이익을 챙기려고만 해서다.
내 주변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 살펴야한다. 끊임 없이 책 속에서 말하는 이야기들,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책으로 접해야 한다. 좋은 책 속에서는 덕을 가르치고 있다.

역사가 진보하길 바란다면, 나부터 한 발자국 나아가자. 책을 읽고 주변에 관심을 가지고 함께 모이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만 아닐 것이다.

 

[로마제국 쇠망사] 스러지는 제국의 기록 속에서, 고대와 근대의 유럽을 읽다.

기번은 문명과 진보에 대한 관점은 문명은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문명의 대표적인 예로 그는 문자와화폐를  예를 든다 .
문자는 지적인 훈련과 자극을 통해 판단 할 수 있는 도구라고 했으며, 화폐란 교환을 통해 형성되는 인적 네트워크 속에서 물질적인 처지를 개선하려는 노력이라고 한다. 반면 비문명화 된 게르만족을 바라보는 기번의 관점은 게르만족은 문명화를 겪지않고 자유를 누린다고 한다. 그러나 자유를 지키려는 로마시민들의 덕은 욕망 문명 사치등에 무력하기때문이라고 한다
또 게르만족의 비사회성은 물질적인 지보 문화의 발전 속에서 사람들은 사회적 존재가 되어야 하는데 게르만족은 문명화 되지 않아서 이것이 불가능하다. 즉 게르만족은 자유로우나 그 자유는 결국 전쟁으로 표출된 자유이다.
기번은 게르만족은 사회생활의 결여  대해서도 이야기 했다 .개인적 견해는 4세기에 게르만족의 이동으로 로마제국으로 이동이 있었고 처음에 굶주림 -물론 훈족의 이동도 있었지만-때문에 이동이었다 그리고 로마제국에서 약탈과 방화를 일삼고 전쟁을 했다고 배운기억이 있지만 게르만족의 입장에서는 사회 생활의 부제 라고 하기에는  약간 모순인것 같다 그 당시 로마제국은 엄청난 팽창으로  시민들은 향락에 빠져있거야 사치에 빠져 있는 사회 였었다 어느 시대나 그런 사회의 혼란이 오면 봉기나 내란이 일어났으며 나라가 문을 닫는 경우가 만았다.  게르만족은 그런 기회를 잡은 것이 아니었을까?

 

[로마제국 쇠망사] 스러지는 제국의 기록 속에서, 고대와 근대의 유럽을 읽다.

덕성과 부패

미덕은 시민들이 갖추어야 하는 태도로 흔히 바람직한 도덕적인 자질을 일컫는다. 로마에서 이 용어는 공동체의 일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부패는 권위가 아니라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의존하고, 개인의 품성이 타락하는 이중의  과정을 거친다. 자신과 공동체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고, 공동체의 이익을 우선하는 `미덕`을 갖춘 시민들이 정치의 주체이면서 군사였기 때문에 로마는 강력한 국가가 될 수 있었지만 공화국은 `부패`하기가 쉬우며 미덕을 부패가 눌러버리면 공화국은 쇠퇴한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서 알수 있었다.

영어로 virtue라는 말은 흔히 바람직한 도덕적인 자질을 일컫는 것으로 이해된다. 플라톤 등이 이야기했던 기본 덕목, 즉 Justice(정의), Prudence(신중함), Temperance(절제), Fortitude(인내) 등이나 중세 기독교에서 여기에 Hope(희망), Faith(믿음), Charity(자비)를 더해 일곱 가지 기본 덕목을 이야기할 때 일컫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고대 로마인들은 ‘덕성’이라는 말로 이런 개인적인 자질을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조금 다른 맥락에서 이것을 사용했다. 우선 virtue라는 말의 어원을 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라틴어로 virus라는 말은 뛰어남, 가치 등을 포괄하면서 주로 남성의 힘을 지칭한다. 그렇다면 남성적인 힘, 남성의 수월성이 가장 극명하게 발현되는 것은 언제인가? 바로 전쟁이었다. 즉 이 말에는 이미 전쟁과 관련된 심상이 개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또한 로마인들은 사적 개인의 virtue가 아니라 공적인 virtue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즉, 공동체의 맥락에서 virtue가 과연 무엇인지가 중요한 문제라는 것이다. 이때 virtue는 공동체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여기고 공동체의 안녕을 위해서 헌신할 수 있는 자세, 그리고 공동체의 일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행위를 일컫는 것이 된다.

고대인들이 애국심이라고 명명한 공적 미덕은 자신이 속한 자유 정부의 유지와 번영이 바로 자기 자신의 이해가 달려있는 문제라고 강하게 느끼는 데서부터 비롯된다. 공화정 시대의 군대를 무적의 군대로 만들었던 이와 같은 감정은 전제 군주의용병에게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이 결핍을 공적미덕과는 다르지만 강력한 성질을 띤 다른 공기들 즉 명예심이나 종교 등으로 메울 필요가 생겨나게 되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미덕은 하나의 국가을  강하게 하지만 항상 부패의 가능성에 누출되어 있으며, 부패가 시작되면 공화국은 쇠락하고 전제 정치가 시작하게 되어 자유을 잃는다. 부패는 공적권위가 아니라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의존하고 개인이 타락하는 이중의 과정을 거친다. 모든 사람들은 덕망이 있어야 큰일을 도모할수있으며 부패가 만연한다면 곧 쇠락하게 될 것이다. 로마제국 쇠망사는  덕성과 부패가 한 제국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되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