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테의 수기] 릴케가 그리는 현대인의 자화상, 그리고 고독
[고전 소개]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유일한 장편 소설 <말테의 수기>는 한 젊은이가 홀로 대도시 파리에서 보고 느끼는 체험과 사색 등을 일기체로 그린 작품이다. 20세기 모더니즘 소설의 시작을 열면서 독일뿐만 아니라 세계문학의 걸작으로 인정받고 있는 이 작품은 불연속적이고 다양한 구성으로 ''존재의 불안''이라는 실존주의적 주제를 다루고 있다. 질보다 양이 판치는 대도시의 공포스러운 체험에서 우러난 이 절망의 기록을 통해 독자는 어찌할 바 모르고 빈곤과 죽음과 공포의 주위를 끊임없이 맴도는 인간상과 마주치게 될 것이다.
[저자] 라이너 마리아 릴케 (1923~1985)
1923년 쿠바에서 농학자였던 아버지와 식물학자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세 살 때 부모의 고향인 이탈리아로 이주한 칼비노는 부모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자연과 접하며 자라났는데 이러한 경험은 그의 전 작품에 녹아들어 있다. 칼비노는 부모의 뜻에 따라 토리노 대학교 농학부에 입학해 공부하던 중 레지스탕스에 참가했는데 이때의 경험이 초기 작품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조셉 콘래드에 관한 논문으로 토리노 대학교 문학부를 졸업했다. 레지스탕스 경험을 토대로 한 네오리얼리즘 소설 『거미집 속의 오솔길』(1947)로 주목받기 시작한 그는 에이나우디 출판사에서 일하면서 당시 이탈리아 문학계를 대표하던 파베세, 비토리니 등과 교제하였다. 『반쪼가리 자작』(1952), 『나무 위의 남작』(1957), 『존재하지 않는 기사』(1959)로 이루어진 『우리의 선조들』 3부작과 같은 환상과 알레고리를 바탕으로 한 작품과 『우주 만화』(1965)와 같이 과학적인 환상성을 띤 작품을 발표하면서 칼비노는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세계 문학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1959년부터 1966년까지 비토리니와 함께 좌익 월간지인 《메나보 디 레테라투라》를 발행했다. 1964년 파리로 이주한 뒤 후기 대표작인 『보이지 않는 도시들』(1972)을 발표하였으며 이 작품으로 펠트리넬리 상을 수상하였다. 1981년에는 프랑스의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1984년 이탈리아인으로서는 최초로 하버드 대학교의 ‘찰스 엘리엇 노턴 문학 강좌’를 맡아달라는 초청을 받았으나 강연 원고를 준비하던 중 뇌일혈로 쓰러져 1985년 이탈리아의 시에나에서 세상을 떠났다.
[말테의 수기] 릴케가 그리는 현대인의 자화상, 그리고 고독
말테가 말하는 고독은 인습에 얽매이지 않고, 진정한 사랑을 추구하는 자의 자세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세상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사는 자는 고독하다.
따라서 릴케에게는 사랑조차도 상대를 제약하고, 속박하는 것일 수 있는 것이다.
대상을 초월하는 사랑만이 무한한 진정한 사랑인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보편적인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며, 신 역시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방향이라고 한다.
[말테의 수기] 릴케가 그리는 현대인의 자화상, 그리고 고독
릴케는 유럽 여행중에 1903년 12월 로마로 가서 처음 접하게 된 키에르케고르(S. Kierkegaard)의 작품에서, 실존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고, 이런 깨달음에 힘입어 쓰여진 것이 바로 『말테의 수기』(1910)이라고 한다.
말테의 수기에서 표현되는 자아 성찰의 과정은 곧, 릴케 자신의 자아의 존재 확인에의 여정이며, 존재의 불안한 상태, 그것이 외부로 부터가 아닌 자신의
내면에 자리한 존재의 근원적인 불안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현대사회는 산업사회를 거쳐 거대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
부를 소수가 독점하는 사회로 진행되어 감으로써 외형적인
화려한 삶의 이면에는 부를 축척하고자 하는 인간의 군상들이 벌이는 추악한 모습, 또한 경쟁에 패배한 소시민의 소외감에 따른 절망과 분노, 끔직한 범죄 그리고 자살.
릴케는 죽음마저도 익명성에 묻혀 인과의 결과만으로 받아들여지는 거대 도시의 사회구조와 인간들에게 회의를 가지지만,
과연 우리는 우리자신의 정체성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물으면 부끄럽다.
근원적인 불안과 공포를 느끼기보다, 가진 것을 더 오래,
더 많이 가지려는 채워지지 않는 욕구에 정신을 두고 있다
사랑은 불안과 마찬가지로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남에게 객관적으로 전달될 수 없으며,
개인의 고유한 세계를 형성해 주고,
실존의 의미를 충만케 하여 창조의 근원이 된다고 믿는다.
대상을 넘어 서는 사랑이란 곧 무한을 향하는 사랑, 이를 통해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열게 되고 삶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게 됨을 말하고 있으며,
즉, 인간은 고독한 사색 속에서 만이 자아를 통찰할 수 있으며
비록 소외된 자신의 삶 속에서도,
스스로 자유로운 정신으로 남아 있기를,
자아의 성찰을 통하여 이 사회의 일그러진 이면을 관찰하는
꿋꿋하고 자유로운 삶을 구가하는 고독한자로 남기를 바라며
고독이란 자아 완성의 길임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테가 말하는 고독한 자와 세상의 질시는 예술가의 삶으로 표현된다. 세상은 자신과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다는 이유로 고독한 자를 힘들게 하지만 세상이 그를 힘들게 할 수록 그의 고독은 더욱 더 강화된다는 아이러니가 있다. 말테는 또 말한다. 사람의 삶은 죽음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죽음으로의 길이라고 한다. 죽음은 사람을 마치 노리개처럼 취급한다는 것이다. 현대 사회가 앓고 있는 병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느덧 강의 종료시간이 다가오는데 이제서야 막 중반을 넘어섰을 뿐이다. 강의를 완전히 다 수강하지 않아서일까? 말테의 수기의 강의 내용이 내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는다. 오늘을 끝으로 본 강의는 마무리 된다 지금껏 다하지 못했던 부분은 다음기회로 미룰수 밖에 없다. 우선 말테의 수기를 책을 통해서 정독해야 하겠다. 말테가 말하려 했던것은 무엇인지 다시한번 강의도 수강해야할 필요가 있겠다. 완료와 완료하지 못한 것의 차이가 너무 크다고 할수 밖에 없다. 무엇을 써야할지 모르는체 그저 머리속에 떠오르는 내 생각만을 끄적거리고 있을뿐이다.
감사합니다.
말테의 수기는 단마크의 젊은 시인 말테가 파리로 와서 죽음과 공포의 현대 문명을 체험하고 자기 내면을 응시하게 되는 수기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소설의 배경이 되는 파리의 모습이나 그것을 바라보는 자아의 심리적인 태도, 세계관 등은 상당 부분 릴케 본인의 것이다. 릴케가 그 당시 애인과 친구들에게 보냈던 편지들을 보면, 말테의 수기의 근간이 되는 언급들이 많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무엇이 릴케의 파리 생활을 힘겹게 했을까. 그것은 말테의 수기의 내용을 통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데, 곧 릴케가 체험하는 파리에서의 우울과 불안은 자아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릴케는 그것을 피하거나 숨으러 하기 보다는 당당히 맞서며 새롭게 보는 법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를수록 넢어로 더욱 빠져드는 것처럼 주인공 말테는 더욱 더 커져가는 공포와 불안의 체험들을 헤쳐 나가며 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해 나간다.
현대는 자본주의 시대로 많은 사람들이 갈수록 보다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돈을 벌고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어쩌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벌어 출세를 하려고 하지만, 마음의 깊은 곳에서는 나도 모르게 미래에 대한 우울과 불안이 점점 커져가고, 그를수록 이런 마음을 숨기기위해 더욱더 사회에서 만든스펙만을 좇는 그런 생활만을 추구하면서 사는게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라는 허탈한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살아 보겠다고 이 도시로 몰려오는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여기서 죽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라는 서두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말테 라우리츠 브리게라고 하는 젊은 덴마크 시인의 내면 기록이며, 그가 파리에서의 고독한 생활 속에서 묵묵히 써놓은 수기라는 형식을 취하여 씌어져 있다.
말테는 죽음에 관하여 생각한다. 여기에서 죽음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순순히 떠나간다"는 것이다. 그는 문득 지금은 친지 하나 없는 고향의 시종직 크리스토프 데틀렙 브리게의 국왕과 같았던 죽음을 생각한다. 그리고는 열두서너 살 소년 시절에 외할아버지의 오래된 성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여러 사람들의 눈앞을 스치고 간 부인의 망령 같은 것을 생각해 본다.
어느 날 말테는 국립도서관에서 한 행복한 시인의 생활에 접하고, 그 시인처럼 "낡은 도구류나, 조상의 초상화나 책과 더불어 살며" 마을의 시계탑을 바라보면서 여러 가지 떠오르는 일을 적어 보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말테는 "비는 사정없이 나의 눈에 스며든다"에서 보듯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가 눈으로 본 것은 모두 무서운 절망의 말을 건네고, 베토벤이나 입센을 떠올릴 때는 "명성이라는 것은 오해의 총계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후반부터는 유년 시절의 추억이 펼쳐진다. 어머니에게서 들은 동생 잉게보르크의 죽음과 강아지 이야기, 어머니에게 여자아이처럼 길러진 말테의 당혹감, 유일한 친구 에리크, 그리고 할머니, 그리고 그에게 시의 세계를 깨닫게 해준 노처녀 아벨로네 지금 파리에서의 말테의 불안과 고독은 이미 유년과 소년 시절에 시작되고 있었음을 기억은 말해 주고 있다.
카스프라 스탄파나 포르투갈 승려의 사랑과 같이, 무한한 고통을 이겨내고, "사랑하는 여성"이 되어, 남자보다 훌륭하게 된 여성들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유년 시절의 탄생일의 축하 때의 불안과 아버님 장례식 때의 추억이 씌어지며, 죽음과 운명의 어두운 비극이 역사상의 유명한 인물의 죽음을 통하여 씌어진다.
아파트의 이웃인 러시아 사람이나 하급관리 또는 학생들의 기묘한 정신의 불안이 펼쳐지고, 이리하여 고독한 자와 신과의 관계에 대한 사색이 계속되고, 신에의 사랑에 관해 서술된다. 그런 경우 신에의 중계자 그리스도는 하나의 경계로서 생각되고, 신에 이르는 도정에서 그리스도 때문에 억류될 '두려움'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말테에 있어서 성서의 '탕자'이야기는 다른 사람의 사랑을 거부함으로써 더 큰 사랑, 진실한 신의 사랑을 깨닫는 이야기가 된다. 말테는 '탕자'에 빗대어 신과 사랑과 고독에 관하여 말하고 "신만이 나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라고 그 '탕자'는 생각한다. 그러나 신은 아직 그를 사랑하려 하지 않는다"라는 말로 끝맺는다.
옆집에 사는 하급 관리 니콜라이 쿠스미취를 통해 현대 사회의 아파트 소통 불허에 대한 모습을 엿볼수 있습니다. 현대인의 합리성에 대한 극단적 추구와 결국 이로써 실존적 의미를 잃게 되는 경우를 볼수 있으며 결론적으로 실존 의미와 시간에 대한 깨닮음으로 삶의 변화, 예술을 통해 실존적인 삶을 구현할 수 있게 됩니다. 다시 말해 니콜라이 쿠스미취는 시간을 선물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릴케가 말하는 고독은 예술과 창조의 근원이며 자아를 완성하는 길입니다. 이에 사람들은 고독한 자아를 언제나 비난하는데, 자신의 일그러진 삶과는 반대로 꿋꿋하고 자유로운 사람을 구가하는 고독한 자아를 시샘하게 때문이라고 합니다.
말테는 현실의 불안을 탈피하기 위해 유년기를 회상하지만 결국은 불안에 휩싸입니다. 하지만 불안은 특정 대상을 지니지 않는 심리학적으로 설명 불가능한 것입니다. 결국 불안은 삶의 이면과 자아를 통찰 하는 원동력으로 그 방향을 바로 잡습니다.
불안은 개인의 고유한 세계를 형성화하고 실존의 의미를 충만케 하며, 창조의 근원이 되는 메개체 입니다.
▶말테가 말하고 있는 현대사회의 문제를 자아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설명하고, 그 해결의 방향으로 제시되는 것들을 설명하시오.
릴케는 유럽 여행중에 1903년 12월 로마로 가서 처음 접하게 된 키에르케고르(S. Kierkegaard)의 작품에서, 실존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고, 이런 깨달음에 힘입어 쓰여진 것이 바로 『말테의 수기』(1910)이라고 한다.
말테의 수기에서 표현되는 자아 성찰의 과정은 곧, 릴케 자신의 자아의 존재 확인에의 여정이며, 존재의 불안한 상태, 그것이 외부로 부터가 아닌 자신의
내면에 자리한 존재의 근원적인 불안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현대사회는 산업사회를 거쳐 거대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
부를 소수가 독점하는 사회로 진행되어 감으로써 외형적인
화려한 삶의 이면에는 부를 축척하고자 하는 인간의 군상들이 벌이는 추악한 모습, 또한 경쟁에 패배한 소시민의 소외감에 따른 절망과 분노, 끔직한 범죄 그리고 자살.
릴케는 죽음마저도 익명성에 묻혀 인과의 결과만으로 받아들여지는
거대 도시의 사회구조와 인간들에게 회의를 가지지만,
과연 우리는 우리자신의 정체성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물으면 부끄럽다.
근원적인 불안과 공포를 느끼기보다, 가진 것을 더 오래,
더 많이 가지려는 채워지지 않는 욕구에 정신을 두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의 사회 안에서 불합리하고 상식적인
인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은,
우리가 죽음에 대한 진지한 성찰 없이, 물신적 맹목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릴케는
아무리 추악한 현실이라도 보는 법을 새롭게 배워,
보고자 하는 사람들에 대한 눈길을 거두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사랑은 불안과 마찬가지로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남에게 객관적으로 전달될 수 없으며,
개인의 고유한 세계를 형성해 주고,
실존의 의미를 충만케 하여 창조의 근원이 된다고 믿는다.
대상을 넘어 서는 사랑이란 곧 무한을 향하는 사랑, 이를 통해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열게 되고 삶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게 됨을 말하고 있으며,
즉, 인간은 고독한 사색 속에서 만이 자아를 통찰할 수 있으며
비록 소외된 자신의 삶 속에서도,
스스로 자유로운 정신으로 남아 있기를,
자아의 성찰을 통하여 이 사회의 일그러진 이면을 관찰하는
꿋꿋하고 자유로운 삶을 구가하는 고독한자로 남기를 바라며
고독이란 자아 완성의 길임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릴케가 우리에게 들려주려는 것은
인간은 고독한 사색을 통하여서만이 자신과 인간의 구원이 있다는 것을 들려주고 싶은 것이다.
▶말테가 말하고 있는 현대사회의 문제를 자아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설명하고, 그 해결의 방향으로 제시되는 것들을 설명하시오.
릴케는 유럽 여행중에 1903년 12월 로마로 가서 처음 접하게 된 키에르케고르(S. Kierkegaard)의 작품에서, 실존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고, 이런 깨달음에 힘입어 쓰여진 것이 바로 『말테의 수기』(1910)이라고 한다.
말테의 수기에서 표현되는 자아 성찰의 과정은 곧, 릴케 자신의 자아의 존재 확인에의 여정이며, 존재의 불안한 상태, 그것이 외부로 부터가 아닌 자신의
내면에 자리한 존재의 근원적인 불안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현대사회는 산업사회를 거쳐 거대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
부를 소수가 독점하는 사회로 진행되어 감으로써 외형적인
화려한 삶의 이면에는 부를 축척하고자 하는 인간의 군상들이 벌이는 추악한 모습, 또한 경쟁에 패배한 소시민의 소외감에 따른 절망과 분노, 끔직한 범죄 그리고 자살.
릴케는 죽음마저도 익명성에 묻혀 인과의 결과만으로 받아들여지는
거대 도시의 사회구조와 인간들에게 회의를 가지지만,
과연 우리는 우리자신의 정체성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물으면 부끄럽다.
근원적인 불안과 공포를 느끼기보다, 가진 것을 더 오래,
더 많이 가지려는 채워지지 않는 욕구에 정신을 두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의 사회 안에서 불합리하고 상식적인
인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은,
우리가 죽음에 대한 진지한 성찰 없이, 물신적 맹목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릴케는
아무리 추악한 현실이라도 보는 법을 새롭게 배워,
보고자 사람들에 대한 눈길을 거두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사랑은 불안과 마찬가지로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남에게 객관적으로 전달될 수 없으며,
개인의 고유한 세계를 형성해 주고,
실존의 의미를 충만케 하여 창조의 근원이 된다고 믿는다.
대상을 넘어 서는 사랑이란 곧 무한을 향하는 사랑, 이를 통해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열게 되고 삶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게 됨을 말하고 있으며,
즉, 인간은 고독한 사색 속에서 만이 자아를 통찰할 수 있으며
비록 소외된 자신의 삶 속에서도,
스스로 자유로운 정신으로 남아 있기를,
자아의 성찰을 통하여 이 사회의 일그러진 이면을 관찰하는
꿋꿋하고 자유로운 삶을 구가하는 고독한자로 남기를 바라며
고독이란 자아 완성의 길임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릴케가 우리에게 들려주려는 것은
인간은 고독한 사색을 통하여서만이 자신과 인간의 구원이 있다는 것을 들려주고 싶은 것이다.
[말테의 수기] 릴케가 그리는 현대인의 자화상, 그리고 고독
▶말테가 말하고 있는 현대사회의 문제를 자아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설명하고, 그 해결의 방향으로 제시되는 것들을 설명하시오.
릴케는 유럽 여행중에 1903년 12월 로마로 가서 처음 접하게 된 키에르케고르(S. Kierkegaard)의 작품에서, 실존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고, 이런 깨달음에 힘입어 쓰여진 것이 바로 『말테의 수기』(1910)이라고 한다.
말테의 수기에서 표현되는 자아 성찰의 과정은 곧, 릴케 자신의 자아의 존재 확인에의 여정이며, 존재의 불안한 상태, 그것이 외부로 부터가 아닌 자신의
내면에 자리한 존재의 근원적인 불안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현대사회는 산업사회를 거쳐 거대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
부를 소수가 독점하는 사회로 진행되어 감으로써 외형적인
화려한 삶의 이면에는 부를 축척하고자 하는 인간의 군상들이 벌이는 추악한 모습, 또한 경쟁에 패배한 소시민의 소외감에 따른 절망과 분노, 끔직한 범죄 그리고 자살.
릴케는 죽음마저도 익명성에 묻혀 인과의 결과만으로 받아들여지는
거대 도시의 사회구조와 인간들에게 회의를 가지지만,
과연 우리는 우리자신의 정체성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물으면 부끄럽다.
근원적인 불안과 공포를 느끼기보다, 가진 것을 더 오래,
더 많이 가지려는 채워지지 않는 욕구에 정신을 두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의 사회 안에서 불합리하고 상식적인
인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은,
우리가 죽음에 대한 진지한 성찰 없이, 물신적 맹목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릴케는
아무리 추악한 현실이라도 보는 법을 새롭게 배워,
보고자 사람들에 대한 눈길을 거두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사랑은 불안과 마찬가지로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남에게 객관적으로 전달될 수 없으며,
개인의 고유한 세계를 형성해 주고,
실존의 의미를 충만케 하여 창조의 근원이 된다고 믿는다.
대상을 넘어 서는 사랑이란 곧 무한을 향하는 사랑, 이를 통해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열게 되고 삶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게 됨을 말하고 있으며,
즉, 인간은 고독한 사색 속에서 만이 자아를 통찰할 수 있으며
비록 소외된 자신의 삶 속에서도,
스스로 자유로운 정신으로 남아 있기를,
자아의 성찰을 통하여 이 사회의 일그러진 이면을 관찰하는
꿋꿋하고 자유로운 삶을 구가하는 고독한자로 남기를 바라며
고독이란 자아 완성의 길임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릴케가 우리에게 들려주려는 것은
인간은 고독한 사색을 통하여서만이 자신과 인간의 구원이 있다는 것을 들려주고 싶은 것이다.
[말테의 수기] 릴케가 그리는 현대인의 자화상, 그리고 고독
말테는 파리에서의 체험을 통하여 현대사회에 있어서 인간들의 소외, 고독과 불안을 문제점으로 주목하였으며, 이들 문제점들로 인해 자아의 상실과 붕괴가 초래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 문제점들 중에서 불안은 자아의 근본을 흔들어 놓는 것으로 이 불안 때문에 사람들이 진정한 자기얼굴을 갖고 살아가지 못하고 있음을 '얼굴에 대한 이야기'로 설명하고 있다.
말테는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문제점들에 대해서 '새롭게 보는 법'을 제시하였다.
가령, 죽음을 익명적이고, 단순한 인과과정의 결과로만 받아들여 장례를 그저 시체 치우는 절차로 간주되던 것으로 부터 누구에게나 고유한 자기만의 죽음이고, 인과적 과정이 아닌 삶의 종점이자 완성점으로 봄으로써 인간의 참된 실존을 가능케 하였다.
또한, 고독을 예술과 창조의 근원이며, 자기 완성의 길로 새롭게 보았고, 주체성을 뒤흔들어 놓는 불안은 개인의 고유한 세계를 형성해 주며 실존의 의미를 충만케 해주는 창조의 근원임을 제시하였다.
이렇게 릴케는 <말테의 수기>를 통하여 자아 및 정체성의 위기를 벗어나 보다 진정한 자신만의 삶을 살기 위한 방법을 설명하였고, 궁극적으로 사람은 '무한을 향하는 사랑'을 통하여 자신의 마음을 열게되고, 삶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사랑에 관한 담론을 제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