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철인(哲人)황제의 자경문(自警文)
[고전 소개]
빌 클린턴 전미 대통령은 ‘TV, 책을 말하다’에 나와 자신의 자서전 이야기를 하며 청년기에 읽은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 자신의 인생에 많은 영향을 미쳤고 밝힌 바 있다. 권력보다 철학을 사랑한 철인(哲人) 통치자의 웅숭깊은 육성이 시공을 초월하여 큰 울림과 모범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직업이 황제였던 철학자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그 어디에도 권력자나 1인자에 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삶에 대한 혜안과 인생에 대한 겸손한 자세를 스스로 일깨우기 위해 씌어진 『명상록』에는 오히려 자신의 결함에 대한 경계, 스토아 학파의 입장에서 자신에게 들려주는 충고와 반성, 자신에게 귀감이 될 만한 교훈적 성격의 짤막한 경구와 인용문, 그리고 신의 섭리, 인생의 무상함, 도덕적 정진, 같은 인류에 대한 관용 등, 우주에 홀로 선 고독한 인간에게 필요한 삶의 자세들이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인생 지침서의 고전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능력에 의해 ‘the Best man’을 양자로 들여 황제의 계승자로 삼았던 당시 풍습에 따라 아우렐리우스가 황제가 되었을 때 로마 제국은 이미 전성기를 지나 쇠락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변방 이민족들의 크고 작은 침략에 끊이지 않았고, 그는 전쟁터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러나 아우렐리우스는 역설적으로 말한다. ‘철학하기에는 인생의 어떤 다른 상황도 네가 지금 처해 있는 상황만큼 적합하지 않다는 것은 명명백백하지 않은가!’(186쪽)라고. 아우렐리우스는 전쟁의 와중에서도 이 책을 쓰며, 외부의 압력이 미치지 못하는 마음속에서 정신을 고양시키고 마음의 평정을 찾았다. 원전에 따라 다소 투박하고 친절하지 않은 어투를 그대로 살린 번역은 아우렐리우스의 고뇌를 대변해주며 오히려 읽어갈수록 큰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로마의 최고 권력자였던 카이사르가 쓴 『갈리아 전쟁기』와 『내전기』가 로마의 영토 전쟁과 그에 따른 전술과 전투 상황을 기록하고 있다면, 그 후 200년 이상의 시차를 두고 역시 전장에서 집필된 『명상록』이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과 그 정신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못 흥미로운 비교를 보인다.
[저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121~180)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 제국의 16대 황제이자 5현제의 마지막 황제로 스토아 철학자였다. 그는 121년 4월 로마에서 마르쿠스 안니우스 베루스(Marcus Annius Verus)와 도미티아 루킬라(Domitia Lucilla)의 아들로 태어났다. 할아버지가 하드리아누스와 인척간인지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어려서부터 황제를 자주 알현하며 귀염을 받았는데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진리에 대한 탐구 정신이 강한 이 소년을 ‘안니우스 베리시무스’(‘가장 진리를 좋아하는 안니우스’의 뜻)라고 부르며 그의 교육에 관심을 기울였다.
일찍 아버지를 여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할아버지에게 입양되어 당대 최고의 학자들에게서 수사학, 철학, 법학, 미술 등을 공부하게 되는데, 수사학자 프론토에게 라틴 수사학을, 헤로데스 앗티쿠스에게 그리스 수사학을 배웠다. 146년부터는 스토아 철학자 루스티쿠스와 에픽테토스의 영향을 받아 주로 철학에서 지적 흥미와 정신적 자양분을 구했다.
로마 제국의 황금기가 저물어갈 무렵 황제가 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전선에서 여러 해를 보내며 격무에 시달리게 되는데 그 와중에 틈틈히 『명상록』을 집필했다. 인생과 우주의 본성과 신들의 존재 방식에 관하여 그리스어로 기록해둔 이 책은 일종의 수상록으로서 ‘명상록’이란 제목은 후세 사람들이 붙인 것이다. 문학과 철학의 걸작 『명상록』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를 경계하고 깨우쳐 올바른 길을 가고자 한, 황제 개인의 치열한 고뇌와 자기정화, 아우렐리우스가 꽃피운 후기 스토아 학파의 사상 세계와 만날 수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명상록"은 삶에 대한 진리를 잠언이라는 짧은 말과 그림을 그리는듯한 묘사로 드러낸 서양문학의 찬란한 유산이며,헬레니즘 전통의 스토아 철학의 복원에 귀중한 자료이고, 기독교적 영성문학의 효시이다. "명상록"의 서술태도는 첫째,삶의 치료기술 혹은 약으로서의 철학의 실천적 이해를 중시했고 그 방법으로 자연을 따라가기를 치료의 핵심으로 삼았다.둘째,철학적 솔직성에 의거한 방법론을 제시했다.즉 사물의 본질을 직시하기위해 자신의 영혼의 껍데기를 제거하고 사물을 잘 관찰하여 본성을 관통하고 개체에대한 자세한 분석을 요구했다. 셋째,논리학 중심의 철학사조를 비판하여 논증 대신 이미지의 형상화로 철학적 대상을 구체화 했다.즉 올리브가 다익어서(자연적 본성이 완성되어) 떨어질때의 비유를 들어 부분(인간)으로서 관계맺는 전체(자연)라는 스토아적 관념에 따라 죽음을 성찰했다.또한 아우렐리우스는 포괄적 우주관에 의해, 영혼불멸이나 불멸의 지적 성취에 의존하지않고 자연을 통한 삶과 소멸의 필연적 순환을 관조했고,신의 관점을 취하여 철학적 상승을 이룸으로서 ,부분이 아닌 전체/우연이 아닌 필연/신의 섭리와 운명을 강조함으로써 거시적 자아 정체성의 기준을 마련했다.
물질 만능과 정보 통신의 광속안에서 살아가야하는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무소유와 느림의 미학이 "명상록"안에 있는듯하며,이를 통해 인간 삶의 공허함과 무질서함을 다시한번 깊이 생각해봐야겠다.
[명상록] 철인(哲人)황제의 자경문(自警文)
스토아 철학을 대표하는 마커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다음과 같은 세가지 관점에서 그 서술의 특징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삶의 기술로써의 철학을 얘기하고 있다.
의사가 사람의 몸을 치료한다면 철학자는 철학으로서 사람의 마음 즉, 영혼을 치료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르쿠스는 ‘의사를 찾아가는 마음으로 철학을 찾아야 한다’라고 했고 철학의 원칙으로 슬픔을 극복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둘째, 비록 그 진실이 불편하더라도 사물의 본질을 꿰뚫고 낱낱이 해체해서 볼 것을 권하고 있다.
그 예로 겉보기에 멋지고 화려한 망토는 어린 짐승의 피부를 천연 염색한 것이라고 보는 시각, 남녀간의 성교를 신체 내부기관들위 마찰에 의한 사정 이라고 보는 것 등이 그러하다. 마커스는 이러한 시각을 유지함으로써 사물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고 이를 통해 철학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셋째, 우주적 관점에서 볼 것을 얘기하고 있다.
나라는 관점, 특정 집단에 소속된 입장에서의 판단 등과 같이 제한된 사고와 시각을 가지고 판단하지 밀고 우주적인 관점에서 현상을 바라보고 판단하면 모든 것에 대해 더욱 잘 이해하게 되고 generous해 지며 더 후회없는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마커스는 이러한 관점들을 유지하면서 형상화(imagination) 하라고 한다. 삼단논법과 같은 이론적인 방식에 의한 접근이 아니고 스스로 머리와 가슴으로 이미지로 구체화하면 좀 더 절실히 느끼고 이를 통해 실천을 할 수 있다는 것인데 그 마지막은 누구나 맞이하게 되는 '죽음'일 것이며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올리브' 열매와 나무의 비유를 통해 얘기하고 있다.
즉, '올리즈 열매'라는 자연적 본성이 ‘완성’되어 나무로부터 땅에 떨어지듯 인간의 경우도 자연적 본성의 완성이 죽음으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핵심은 죽음을 ‘자연으로 돌아가는 휴식’으로까지 보고 있다는 것이다.
마커스의 명상록을 접하면서 내가 현재 기본 생활신조로 삼고 있는 '위빠사나' 의 '알아차리기'와 너무 유사해서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위빠사나에서 부처님도 또한 사물 과 현상에 대한 불편하지만 진정한 실체를 낱낱이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고 형상화 하도록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다.비록 생명의 탄생과 죽음에 대해 바라보는 기본적인 시각의 치이는 있을 것이지만 그 방법론에 있어서 불교와 스토아 철학은 놀랍도록 유사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
이러힌 접근이야말로 진실에 다가가는 가장 빠르면서고 바른 방법일 것이며 이를 통해 참된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명상록] 철인(哲人)황제의 자경문(自警文)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은 분명 우리 삶을 편리하게 해 주었다. 디지털 정보 기술, 생명 과학, 나노 공학, 로봇 공학은 우리가 옛날에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들을 가능케 만들었다. 더욱 안락한 생활 그리고 더욱 긴 수명에 대한 인류의 욕망을 첨단 과학·기술은 충족시켜 주고 있다. 하지만 편리한 삶이 곧 행복한 삶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 과학·기술의 유토피아가 인간을 진정으로 더 행복하게 만드는가?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간 삶의 궁극적인 목적인가? 인간 삶의 최종적인 목적은 대체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위해 오늘을 살고 있고, 또 무엇을 위해 이 모든 문명의 이기를 즐기고 있는가? 나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가?
다소 고리타분한 질문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세상에서 이보다 더 중요한 질문들은 없다. 이런 질문들은 삶의 근본적인 질문이다. 삶의 근본적인 질문은 어떤 시대에도 항상 던져지는 질문이다. 세상이 바뀌어도, 세대가 바뀌어도 이런 질문은 결코 죽지 않는다. 그러나 삶의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서 오늘날의 과학·기술은 아무것도 말해 줄 수 없다. 고전(古典)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보다 앞서서 이런 질문들을 마주한 채 깊은 고민을 했던 옛 선현들의 생각이 담겨 있는 기록이 고전이다. 고전은 삶의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게끔 인도하는 나침반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명상록에서 던진 질문들은 특별히 이런 것들이다. 죽음은 무엇이고, 그 대척점으로서 삶은 무엇인가? 삶에서 필연은 무엇이고, 우연은 무엇인가? 행복은 무엇인가? 학문의 목적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이런 질문들은 누구라도 한번쯤 생각했을 혹은 생각함직한 것들이다. 이것들은 근본적 질문이기 때문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이런 질문에 대한 깊은 사색과 성찰의 기록이다.
<명상록>의 서술 태도 세가지를 열거하고 그 특징을 서술하고, 이 과정을 통해 떠오르는 여러분만의 생각을 정리해 보세요.
1. 삶의 기술로서의 철학.
마음이 아프면 병원에 가는 것과 같이, 의사를 찾아가는 자세로 철학에 임해야하며, 영혼의 질병인 정념을 극복하는 것이 철학의 목적이라고 기술하였다.
올바른 삶은 자기 자신의 개인적 자기 동일성에 따르는 것이 아닌, 우주의 부분으로서 살아가는 것으로 인간사의 정념을 다스릴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2. 형상화
전제와 결론의 논리적 관계속에서 논증을 강조하였으며, 이성에 따른 논리적 증명 대신 이미지로 형상화 할 것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인간 삶의 공허함과 무질서함을 솔직하게 묘사하고 지상적 가치를 평가 절하하였다.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의 예와 같이 자연의 일부로서의 인간으로 부분과 전체의 관계를 형상화하여, 죽음을 자연으로 돌아가는 휴식으로 여긴다.
3. 철학적 상승
철학자는 하늘에서 모든 일을 내려다 본다고 여기며, 삶과 죽음의 필연적 순환을 인식하고 연혼의 불멸성에는 따르지 않았다. 또한 신의 관점을 취하여 인간사를 필연으로 인식하고, 전 우주와 나를 연계시켜 인식하며, 좋음과 나쁨을 전체적인 관점에서 조망하였다. 신의 관점을 취한다는 것은 모든 것이 정해저 있고 필연적인것이라 생각할 수 있겠으나, 처한 상황에 대해 낙담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삶에 최선을 다하라는 뜻이라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매우 인상깊고 감동이 있었다.
[명상록] 철인(哲人)황제의 자경문(自警文)
명상록에서는 철학적 솔직성을 드러내기 위해 3가지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관통해서 관찰하기, 사물(개체)을 주의 깊게 관찰하기, 남김없이 다 드러내기 3가지이다.
1. 관통해서 관찰하기
정신이 항상 깨어있어야 함을 강조했다.
영혼의 본질을 바라봐야 한다.
또한 자신도 타인에게 자아 그대로를 보여야 한다.
2, 사물(개체)을 주의 깊게 관찰하기
철학은 사물의 질서를 일반화하지만, 아우렐리우스는 반대로 개체에 대한 자세한 분석을 요구했다.
3. 남김없이 다 드러내기
희비극적, 일종의 블랙코미디로서, 불편한 진실을 희극적으로 드러내라고 하였다.
즉 사물이 가지고 있는 어두운 모습을 적나라하게 폭로하라고 하였다.
이는 현실의 어두운 면을 직시하는 철학적 솔직함의 전통을 지니고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레리우스의 명상록은 현대사회에서도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대인들이 자꾸 돈이나 물질적인 것, 외면에만 집착하는 것을 비판하고, 내면, 정신적 성찰을 강조하는 텍스트로 읽힐 수 있다.
또한 최근에 와서 경영에서도 큰 그림을 그리는 것 만큼 디테일을 신경써야 한다는 주장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이는 사물에 대한 주의깊은 관찰을 요구하는 명상록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또 현대사회의 많은 어두운 부분이 언론에서조차 조작, 검열되고 드러나지 않고 있다면, 이를 직시하고 드러내도록 요구하는 아우렐리우스의 철학적 솔직함은 현대사회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명상록] 철인(哲人)황제의 자경문(自警文)
<명상록>의 서술 태도 세가지를 열거하고 그 특징을 서술하고, 이 과정을 통해 떠오르는 여러분만의 생각을 정리해 보세요.
-> 명상록은 후기 스토아 철학의 대표주자인 철인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작품이다. 명상록이 중요한 사료인 이유는 스토아 철학의 귀중한 복원자료가 되기 때문이고 자기분석, 자기전념, 자기치료의 글쓰기로 대표되는 영성문학의 효시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3가지의 서술태도로 이 글을 집필했다.
첫째, 치료의 기술 혹은 약으로써의 철학의 관점으로 서술되었다. 예를들어 의사는 사람의 신체 즉, 몸을 치료한다면 철학자는 사람의 마음 즉, 영혼을 치료할 수 있어야 하고 의사의 치료도구가 칼과 같은 의료도구 이듯 철학자의 치료도구는 철학이라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개념이다. 그래서 마르쿠스는 ‘의사를 찾아가는 마음으로 철학을 찾아라’라고 했고 철학의 원칙으로 슬픔을 극복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둘째, 사물을 겉만 보는 것이 아닌 관통해서 본질을 들여다 보아야 하며 그런 관점에서 서술되었다. 그러기 위해 정신이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고 마르쿠스는 말한다. 그렇기에 자신은 자신의 영혼을 덮고 있는 껍데기를 제거해야 하고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껍데기가 아닌 영혼을 관통해서 그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보려고 노력해 한다는 것이 마르쿠스의 메시지다.
셋째, 마치 글을 읽고 그림이 그려지듯 형상화(Imagination) 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으로 서술되었다. 여기서 스토아 철학의 핵심인 죽음에 대한 관조가 등장한다. 결국 삶을 형상화 해서 이미지로 그려보면 종착점은 ‘죽음’이 된다는 것이 마르쿠스가 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스토아 철학에서 죽음이란 반드시 나쁜 것 만은 아니다. 예를들어 올리브 열매의 경우 올리브가 다 익었기 때문에 자연적 본성이 ‘완성’되어 땅으로 떨어지듯 인간의 경우도 자연적 본성의 완성이 죽음으로 귀결된다고 보고 있다. 핵심은 죽음을 ‘자연으로 돌아가는 휴식’으로 본다는 것이다.
최근 등장하는 많은 자기 계발서나 심리, 영혼치료에 관련된 서적의 근원을 명상록으로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아 보인다. 결국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 봄으로써 인간은 자신의 근원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마르쿠스의 명상록을 다시 한번 읽어 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다.
명상록의 서술 태도 3가지
1. 관통해서 관찰 하기 : 표면 뒤에 감추어진 진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하여 아우렐이우스는 정신이 항상 깨어 있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자신의 영혼을 덮는 껍데기를 제거하고 본질을 바라봐야 하고 타인을 이해하기 위하여 자신도 타인에게 자아 그대로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하였다. (꿈과 깨어남)
2. 사물을 주이깊게 관찰하기
철학은 질서을 위반하는 특성이 있는데 아루렐리우스는 반대로 사물에 대한 자세한 분석을 강조하였다. 불편한 진실을 희극적으로 드러내고 청자의 불쾌한 감정을 이끌어 냄으로써 익숙한 사고에서 벗어나는 것을 유도 하였다.(개체에 대한 객관적 분석)
3. 님김 없이 다 드러내기이다.
현실이 가지고 있는 어두운 면을 빗겨나지 않고 직시하여 철학적 솔직성을 강조하였다. 이것을 통해 아우렐리우스는 그러한 통찰만이 진리에 접근할 수 있다고 보았다.
- 떠오르는 생각 : 명상록은 삶에 대한 진리를 짧은 말과 그림을 그리듯이 묘사하여 잠언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를 통해서 진리를 위해서는 인간이 끊임없이 성찰해야 하고 위를 위해서는 관통하여 관찰하고 사물을 주의깊게 관찰, 남김없이 다 드러냄을 제시하고 있다.
- 먕상록의 명구 : 자연적 본성을 따라 우주의 부분으로 살아감으로서 정념을 치료할 수 있다. 성관계란 내장기관의 마찰로 인한 점액의 경련성 배출. 죽음 자연에 감사한 마음으로 맞이하는 휴식이다.
[명상록] 철인(哲人)황제의 자경문(自警文)
1. 명상록이 후세에 미친 영향 : 스토아 철학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참고자료. 영성문학의 기초.영성훈련을 위한 메뉴얼.(신학교 교재로 사용됨)
2. 코모두스를 위한 변론 : 카이수스 디오의 헌시 : 코모두스에게 황제를 승계한것을 비판.
3. 결론 : 명상록은 삶에 대한 진리를 잠언이라는 짦은 말과 그림을 그리는 듯한 묘사로 드러낸 서양문학의 값지고 찬란한 유산이다.(영화 글래디에어터의 주인공 막시무스를 생각하며 자기부친 아우렐리우스 황제를 죽인 코모두스(오현제의 마지막 황제)를 비교하면서 재미있게 공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