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신예찬] 현자에게 전하는 어리석은 여신의 진리 예찬
[고전 소개]
우신 예찬은 1511년 프랑스에서 출간되자마자 단숨에 팔려 나갔다. 그리고 이후 재판을 거듭하며 유럽 각국어로 번역되는 대단한 성과를 거두었다. 사실 에라스뮈스는 이 작품을 여행 중 심심풀이로 머리를 식히려 구상한 뒤 일필에 써나갔노라고 고백했고, 집필 기간도 고작 일주일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단숨에 쓴 이 작은 책은 유럽 전역을 뒤흔들어 놓았다. 단적으로 교회의 온갖 폐습에 대한 풍자와 고발은 종교계를 긴장시켰고, 결국 《우신 예찬》은 종교 세력의 갈등을 야기한 핵심 기운으로 판단돼 금서 처분까지 받았다. 하지만 《우신 예찬》은 이단 혐의가 있는 부분이 삭제된 상태로 17세기까지 계속 출간되었다. 시대를 초월해 공감할 수 있는 풍자와 해학이 있었기 때문일 터다. 재미있는 점은 500년도 더 전에 풍자한 내용이 오늘날 봐도 공감을 불러일으킬 때가 있다는 것이다. 가령 통치자들이 대중의 분별력을 두려워하고 무식한 자들을 좋아했다는 점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
‘걸어다니는 사전’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에라스뮈스는 《우신 예찬》에서 그리스ㆍ라틴 문학과 철학은 물론 《성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출처에서 뽑은 인용과 우화, 상징을 이용했다. 그러다 보니 현대의 독자들로서는 원문만 가지고는 그 재미를 느낄 수 없게 되었다. 서해클래식 《우신 예찬》에서는 친절한 설명과 그림 자료를 곁들여 독자들이 에라스뮈스의 지적 유희를 충분히 즐길 수 있게 하였다.
[저자] 에라스무스 (약 1466~1536)
에라스무스는 15세기 중반에 태어나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의 움직임이 한창인 때 성장하였다. 그는 수도사 공동체와 수도원 등에서 소년 시절을 보내다 수도원장의 추천으로 파리로 가는데, 그곳에서 신학박사 과정을 밟으며 여러 권의 소책자와 《격언집》을 펴낸다. 이후 기회가 닿은 영국 기행과 이탈리아 기행은 그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다. 영국에서는 절친한 친구 토머스 모어와 새로운 자극을 주는 존 콜릿을 만난다. 한편 이탈리아에서 보낸 3년 동안 《성경》의 본질을 잊은 사제와 교황을 보면서 인간에 대한 회의를 느끼는데, 이를 계기로 1511년 영국에 돌아와 그 비판적인 생각을 단숨에 써내려 간 작품이 바로 《우신예찬》이다. 《우신예찬》은 풍자적이면서도 익살맞은 문체로 인간들의 순수한 어리석음을 예찬한다. 에라스무스는 다시 영국에 돌아온 후 신학 강의, 번역과 저술에 매진하다가 《신약성경》 번역 작업에 착수한다. 하지만 그의 《성경》은 본문 번역을 새로이 했을 뿐만 아니라 논평과 주해를 붙인 진보적인 방법이었기 때문에 거세게 비난받는다. 또 루터파 지지자로 몰리면서 이 당시 그는 논란으로 점철된 시간을 보낸다. 에라스무스가 종교개혁의 반동자였는지 선동자였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그가 죽으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네덜란드어로 “오, 사랑하는 하느님!”이었다고 한다.
우신은 인간에게 지헤와 규칙, 바른 생활 대신에 재미와 즐거움으로 인생을 살아갈 만한 곳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우신은 인간들에게 정념의 어리석음, 술자리의 어리석음, 결혼의 어리석음등 이루 헤아릴 수 업는 많은 어리적음을 제공해서 이 세상을 살만한 곳으로 만들고 있다고 스스로 주장하고 있다.
우신이 실제 존재하지야 않겠지만 우신이 준 어리석음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큰 역할들을 하고 있다고 봐야 되겠다.
우선, 우신이 준 선물들을 살펴보면 결혼의 어리석음이 있겠다. 결혼으로 인해 생겨날 부부간의 갈등과 출산, 그리고 양육의 어려움을 지혜롭게 파악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결혼을 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들은 '경솔'과 '망각'을 통해 결혼도 하고 또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술자리의 어리석음을 들 수 있다. 술자리에서 때론 무너지고 망가지면서 아주 즐거운 인생을 살 때 이 세상살이의 어려움을 떠나 즐거운 인생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가벼운 즐거움들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되는 것이다.
또 하나, 정념의 어리석음을 들 수 있겠다. 이 세상사람들이 모두 지헤롭고 이성적이기만 하다면 과연 사랑하고, 아이를 놓고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세상에 과연 사랑은 있을까? 사랑하는 순간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사랑에 빠져 어리석은 행동을 한다. 어리석은 사랑을 한다. 그래서, 진짜 사랑을 한다.
실제 우신이 하는 말들은 자화자찬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우신의 헤택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아주 지극히 당연한 현실의 이야기는 아닐까?
우신은 인간에게 정념의 어리석음, 여자의 어리석음, 술자리의 어리석음, 교제의 어리석음, 결혼의 어리석음을 주었다.
또한 어리석음이 없다면 삶은 즐거울 수 없으며, 어리석음에 이끌리지 않는다면 인간관게는 파경에 이른다고 얘기했다.
여자는 어리석음을 통해서 남자들 보다 즐겁게 살며, 이 어리석음으로 남자들에게 아름답게 보인다.
술자리의 어리석음에서는, 나이든 노인은 술자리를 최고의 즐거움으로 삼는다. 술자리는 어리석음을 통해 흥겨울 수 있으며, 산해진미도 웃음과 해학이 없다면 결코 즐거울 수 없음을 얘기하였다.
교제의 어리석음에서는 친구의 잘못을 감싸주고 그들의 결합을 미덕으로 보았다. 사랑하는 사람의 결점도 좋게 보이는 것이 이 어리석음 때문이다.
결혼의 어리석음은 우정의 어리석음과 유사하며 애교, 희롱, 무지, 관용, 묵과 등을 통해 결혼생활을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어리석음을 통해 가족유대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우신이 말하는 어리석음은 단순히 어리석음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우신예찬] 현자에게 전하는 어리석은 여신의 진리 예찬
우신 예찬, 즉 '어리석은 신에 대한 예찬'은 가톨릭교회에 대한 인문주의적 풍자이다. 1509년에 알프스를 넘으면서 그는 이 책에 착상했다. 그리고 유토피아의 저자 토머스 모어의 집에서 열흘 동안 머물면서 "장기를 두는 기분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우신'이란 바보의 신이다. 이 바보의 신은 '부유의 신'을 아버지로, '청춘의 신'을 어머니로, 그리고 '도취'와 '무지'의 두 유모의 젖을 먹고 자랐다. 이 우신은 친구들을 여러 명 가지고 있다. 추종의 신, 게으름의 신, 향락의 신, 무분별의 신, 방탕의 신, 미식과 수면의 신 등. 이 어리석은 신들을 통하여, 필자는 당시 학자들의 어리석음을, 인간 세계의 일체가 어리석음을 통렬하게 쓰고 있다.
이 저서는 당시의 권위주의 및 형식주의로 떨어진 기독교에 대한 이면의 비판으로서, 붓이 진행됨에 따라 대담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당시의 세태에 대한 풍자는 소박한 신앙심의 부활과 동시에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인간상의 회복이라는 주장이었다.
"만일 교황이 기독교의 대리자라면, 그리스도처럼 불행한 생애를 보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러나 지금의 교황은 영화와 행복 속에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종교개혁자 루터와 공동 보조를 취하기에는 그의 "하지만 그러나"가 용서하지 않는다. 에라스뮈스의 이 지성적 태도와 중립주의적 태도는 때로 승리와 명성을 차지했다고는 하지만, 결국 그로 하여금 "신교냐, 구교냐"의 엄격한 선택을 강요당했던 시대에 원만히 적응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 했다.
[우신예찬] 현자에게 전하는 어리석은 여신의 진리 예찬
우신은 인간에게 여러가지 선물을 주었다고 주장하였다.
정념의 어리석음, 여자의 어리석음, 술자리의 어리석음, 교제의 어리석음, 결혼의 어리석음을 얘기하였다.
삶의 어떠한 결합이나 유대도 어리석음이 없다면 즐겁거나 지속될 수 없으며, 어리석음에 이끌리지 않는다면 모든 인간관게는 파경에 이르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인간이 항상 어리석게만 행동해서는 안 되겠지만, 감정을 항상 억누르기만 해서는 인간다운 모습이 아니고 행복하지 못할 거라 생각한다. 또한 주변에 친구나 사람들도 남지 않을 것이다.
여자의 어리석음에서는 여자에 대한 오해와 차별이 보이지만, 술자리의 어리석음에서는, 떄로는 술자리에서 큰 실수를 저지르지만 않는다면, 적당히 취하고 여흥을 즐기는 것이 삶의 즐거움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교제의 어리석음에서도 친구의 잘못을 감싸주는 것은 그 친구에 대한 신뢰일 수 있으며, 결혼의 어리석음에서는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감싸줄 수 있고, 결혼에서야 말로 가장 중요한 것은 배우자 사이의 존중과 신뢰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신이 말하는 어리석음은 단순히 어리석음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이러한 어리석음이 지나치면 문제가 되지만, 적당하다면, 즉 중용을 지킨다면, 오히려 인간으로서의 삶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적당히 부드럽게 하는 윤활유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부분이 전혀 없다면, 삶은 그야말로 무미건조해 질 것이다.
따라서 우신이 말하는 어리석음은 말 뜻 그대로 어리석음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지나친 엄숙주의도 과도한 방종과 무절제도 좋지 않으므로 중용의 묘미를 지키자는 메시지로 읽을 수 있다.
[우신예찬] 현자에게 전하는 어리석은 여신의 진리 예찬
우신은 인간에게 두려움과 공포로부터 해방시킨다
우신은 또한 많은것을 포기하게 하고, 그렇게 함으로서 인간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우신은 단순한 우신이 아니라 지혜의 신이고, 역설의 명수이다. 서양에 우신이 있다면 동양엔 노자가 있다.
[우신예찬] 현자에게 전하는 어리석은 여신의 진리 예찬
우신예찬>에서 우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에 대해 설명하고, 여러분의 생각을 정리하라.
1. 정념의 어리석음
- 만물의 어머니 자연은 세상 곳곳에 어리석음을 뿌려둠
- 스토아철학자들은 지혜란 이성에 지배되고, 어리석음은 정념의 힘에 굴복한다고 봄
- 우신은 이에 동의하자만, 인간은 이성보다는 정념을 훨씬 더 많이 가지고 있고, 이성은 두개골 한쪽에 자리잡고 있지만 정념은 분노와 정욕으로서 온몸에 흩어져 있다고 말함
2. 여자의 어리석음
- 여자에 대한 특별한 자부심을 가짐
- 이성의 능력을 남자에게 더 주도록 자연에게 조언하여, 어리석은 여자가 남자와 집안에서 함께 살며 남자의 심각한 태도를 누그러뜨리도록 함
-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즐겁게 사는 것은 모두 어리석음 덕분임
- 여자들은 지혜의 결여 덕분에 아름다움을 지님으로써, 남자들을 사로잡음
3. 술자리의 어리석음
- 나이 든 노인들은 여자가 아닌 술자리를 최고의 즐거움으로 삼음
- 어리석음이 없다면 술자리는 흥겨울 수 없음
- 진수성찬, 산해진미도 웃음과 재담, 해학의 여흥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음
에라스무스는 당시 카톨릭의 신자이기에 이 사상을 자유롭게 표현한 것 같다. 우신이 말하는 어리석음은 일종의 망각, 너그러운, 참을성으로도 해석이 가능해 보이는데, 여자의 어리석음을 보면 우습다는 생각이 들면서 한편으로는 수긍이 가는 면도 있어 보인다.
[우신예찬] 현자에게 전하는 어리석은 여신의 진리 예찬
<우신예찬>은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가 쓴 작품중 최고로 평가받고 있고 또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작품이다. 에라스무스는 1511년 어리석음을 풍자한 이 책을 저술하여 토마스 모어에게 헌정하는데 <우신예찬>에는 서문대신 편지가 삽입되어 있다.
1.정념의 어리석음
만물의 어머니 자연은 세상 곳곳에 어리석음을 뿌려 두었으며 인간은 이성보다는 정념을 훨씬 더 많이 가지고 있고, 이성은 두개골 한쪽에 자리잡고 있지만 정념은 분노와 정욕으로서 온 몸에 흩어져 있음
2.여자의 어리석음
이성의 능력을 남자에게 더 주도록 자연에게 조언하며 어리석은 여자가 남자와 집안에서 함께 살며 남자의 심각한 태도를 누그러뜨리도록 함.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즐겁게 사는 것은 어리석음 덕분이며 여자들은 지혜의 결여 덕분에 아름다움으로 남자들을 사로잡음
3.술자리의 어리석음
어리석음이 없다면 술자리는 흥겨울 수가 없으며 진수성찬,산해진미도 웃음과 재담, 해학의 여흥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음
4.교제의 어리석음
우정은 어리석음 그 자체로 친구들의 결함을 감싸주고 그들의 결함을 미덕으로 봄. 여자친구의 결점도 아름다움으로 보는 것이 그 예임
5.결혼의 어리석음
결혼도 우정과 비슷한 교제이며 애교, 희롱, 무지, 관용, 묵과 등이 없다면 결혼생활은 지탱되지 못한다. 어리석음을 통해 집안이 조용하고 가족의 유대가 이루어지며 바람난 아내가 눈물 흘리면 안아주고 모른 척 달래주는 것이 끓는 질투심에 끌려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드는 미극보다 나음
[우신예찬] 현자에게 전하는 어리석은 여신의 진리 예찬
[우신예찬] 현자에게 전하는 어리석은 여신의 진리 예찬
<과제><우신예찬>에서 우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에 대해 설명(최소 3가지)하고, 여러분의 생각을 정리해 보세요.
<레포트>
1.정념의 어리석음
만물의 어머니 자연은 세상 곳곳에 어리석음을 뿌려 두었으며 인간은 이성보다는 정념을 훨씬 더 많이 가지고 있고, 이성은 두개골 한쪽에 자리잡고 있지만 정념은 분노와 정욕으로서 온 몸에 흩어져 있음
2.여자의 어리석음
이성의 능력을 남자에게 더 주도록 자연에게 조언하며 어리석은 여자가 남자와 집안에서 함께 살며 남자의 심각한 태도를 누그러뜨리도록 함.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즐겁게 사는 것은 어리석음 덕분이며 여자들은 지혜의 결여 덕분에 아름다움으로 남자들을 사로잡음
3.술자리의 어리석음
어리석음이 없다면 술자리는 흥겨울 수가 없으며 진수성찬,산해진미도 웃음과 재담, 해학의 여흥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음
4.교제의 어리석음
우정은 어리석음 그 자체로 친구들의 결함을 감싸주고 그들의 결함을 미덕으로 봄. 여자친구의 결점도 아름다움으로 보는 것이 그 예임
5.결혼의 어리석음
결혼도 우정과 비슷한 교제이며 애교, 희롱, 무지, 관용, 묵과 등이 없다면 결혼생활은 지탱되지 못한다. 어리석음을 통해 집안이 조용하고 가족의 유대가 이루어지며 바람난 아내가 눈물 흘리면 안아주고 모른 척 달래주는 것이 끓는 질투심에 끌려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드는 미극보다 나음
이와 같이 삶의 어떠한 결합이나 유대도 어리석음이 없다면 즐겁거나 지속될 수 없으며 서로에 대해 잘못 알고 아첨에 속고 눈감아주고 어리석음에 이끌리지 않는다면 모든 인간관계는 파국에 이르게 될 것이다.
우신이 준 선물 어리석음은 우리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윤활유라 할 수 있다.
[우신예찬] 현자에게 전하는 어리석은 여신의 진리 예찬
<우신예찬>은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가 쓴 작품중 최고로 평가받고 있고 또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작품이다. 에라스무스는 1511년 어리석음을 풍자한 이 책을 저술하여 토마스 모어에게 헌정하는데 <우신예찬>에는 서문대신 편지가 삽입되어 있다.
<우신예찬>은 풍자와 농담, 풍자적 찬양연설의 형식을 띠며 '어리석음'의 여신(우신)을 자신의 생각을 전달할 대리인으로 내세워 가벼운 마음으로 무엇이든 어느 누구든 그 어리석음을 풍자하는데 실명으로 풍자하지는 않는다.
우신은 방울달린 모자를 쓴 바보복장의 한 여인으로 등장하여 어리석은 신도들 앞에서 연설하는데, 자기자신을 칭송하는 자화자찬 예찬연설로 시작한다. 그녀는 아무렇게나 말하는 것을 좋아하고 치장하지도 가장하지도 않고 자신의 모습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자 한다.
우신은 자아도취, 아부, 망각, 태만, 환락, 경솔, 음란,광란, 숙면 등 어리석음과 관련된 속성들로부터 도움을 받으며 세상사람들의 어리석음을 풍자한다.
우신은 신과 인간에게 선물을 주는데 인간에게 정념의 어리석음, 여자와 남자의 어리석음, 술자리의 어리석음, 교제의 어리석음, 결혼의 어리석음이라는 선물을 주는데 삶의 어떠한 결합이나 유대도 어리석음이 없다면 즐겁거나 지속될 수 없으며 어리석음에 이끌리지 않는다면 모든 인간관계는 파경에 이르게 됨을 말한다.
또한 인간들은 어리석음, 무지, 망각 의 도움을 받아 늙어서도 청춘을 구가할 수 있으며 양심의 가책으로부터 자유롭고, 창피한 줄도 모르고 행복이 진실에 달려있다는 생각은 착각이며 허상에 달려있음을 말한다.
[우신예찬] 현자에게 전하는 어리석은 여신의 진리 예찬
인간에게 한 가지 혜택만을 주는 그리스 신들과는 달리 어리석음의 여신은 홀로 모든 이에게 온갖 것을 넉넉히 나눠주기 때문에 스스로 최고의 신이라고 자신한다. 우신이 인간에게 주는 선물에는 정념의 어리석음, 여자의 어리석음, 술자리의 어리석음, 교제의 어리석음, 결혼의 어리석음이 있다. 값진 생명도 우신의 베풂이 없었다면 태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결혼생활의 고단함을 미리 안다면 누가 결혼하려고 할까? 삶의 어떠한 결합이나 유대도 어리석음이 없다면 즐겁거나 지속될 수 없으며, 어리석음에 이끌리지 않는다면 모든 인간관계는 파경에 이르게 될 것이다. 모든 일에는 자기만족이나 자화자찬 같은 어리석은 자아도취가 필요하다. 자연이 창조한 것은 학문적 가공이 꾸며놓은 것보다 행복하며 인간보다는 동물이, 현명한 사람보다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행복하다. 어리석은 자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고통에서 해방된 사람들이며 양심의 가책으로부터 자유로우며 걱정이 없고 헛된 희망을 갖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 인종들, 국가들은 음식, 혈통, 역사, 종교 등에서 우월하다는 자아도취에 빠져있다. 그러므로 우신의 너그러운 베풂이 있으므로 비로소 인간사회는 윤활유처럼 매끄럽게 그나마도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에라스무스는 성직자와 왕, 그 신하들, 학자들, 상인들 등 당시 사회 지배계급의 요지경 속인 행태에 대해 우신의 입을 통하여 통렬히 비틀어 풍자하였고, 이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역설적인 해학에 통쾌하게 웃음으로써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 주었던 것 같다. 그래서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은 반면 풍자의 대상이 된 사람들에 의해 금서목록에 지정되는 수난을 겪기도 하였다. 독재시대에 살고 있거나, 그냥 삶이 너무 힘들거나, 심지어 좋은 일도 그 과정이나 진행이 너무 빡빡하여 융통성이 없을 정도면 그 안에 있는 사람은 답답하여 숨을 쉴 수 없다. 힘겨운 일상, 빡빡한 삶에서 그나마 숨통을 트게 해 주는 것은 이처럼 비틀어서 보여주는 세상을 통하여 잠시나마 카타르시스를 느껴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중세시대 뿐 아니라 이 시대에도 종종 우신의 혜택때문에 웃음짓는 사람이 꽤 많으리라 생각한다.